러시아 모스크바 경찰이 3일(현지시간) 다음달 8일로 예정된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를 앞두고 4주 연속 열린 ‘공정선거 촉구 시위’ 현장에서 강경 진압에 나서 800명이 넘는 시위 참가자를 체포했다. 러시아 야권 지지자들은 지난달 20일부터 주말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시위는 모스크바 선거 당국이 유력 야권 인사들의 후보 등록을 요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당국은 출마 예정 야권 인사들에게 모스크바 거주자 50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오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이들의 출마를 방해했다. 야권 인사 10여명이 요건을 달성했음에도 당국은 ‘서명 위조’ 의혹 등을 제기하며 후보 등록을 기각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모스크바 시의회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선거 당국이 야권 후보자들이 받아온 서명을 고의로 무효화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현지 인권 감시 단체인 ‘OVD-인포’에 따르면 후보 등록을 거부당한 유력 야권 인사 류보프 소볼을 비롯해 828명의 시위 참여자들이 이날 경찰에 연행됐다. 모스크바 경찰은 시위 참가자가 약 15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현지 언론은 실제 시위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제2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약 3000명이 모스크바 시위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모스크바 당국은 일주일 전인 지난달 27일 시위 때도 시위 참가자 3500명 중 1400명이 넘는 인원을 체포한 바 있다.
러시아 당국은 반(反) 푸틴 야권 운동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이끄는 반부패재단(FBK)에 대한 수사도 개시하며 전방위적 야권 탄압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인 스베틀라나 페트렌코는 “FBK가 10억 루블(약 184억원)의 불법 자금을 세탁해 재단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자료를 내무부(경찰청)에서 넘겨받았다”고 밝혔다. 수사위원회에 따르면 FBK 직원과 관계자들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제3자로부터 받은 거액의 불법 자금을 모스크바의 여러 은행 계좌를 통해 세탁한 뒤 재단 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자 FBK 창설자인 나발니도 지난달 24일 불법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체포돼 30일 구류 처분을 받고 수감돼 있는 상태다. 그는 구금 닷새째 구치소에서 부종, 발진, 가려움 같은 증세를 보여 시립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나발니를 면회한 주치의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는 “화학물질 테러로 인한 신체이상 증세”라며 그 배후에 정부 당국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