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지난 2일 태국 방콕에서의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사실상 ‘빈손’ 성과로 끝나면서 미국의 역할과 중재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중재하는 시늉만 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은 당분간 ‘한·일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물밑에서 갈등 완화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당국자는 4일 “미국이 당장 한·일 갈등 상황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기존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은 양국이 풀어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미국은 양측에 조속한 화해를 촉구하는 선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한·일 관계 경색이 북핵 협상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관심을 두면서도 중재자 역할에는 선을 그었다.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후 국무부 고위 당국자들이 기자들과 만나 “3국이 만났다는 사실은 적어도 해결책을 찾는 데 (미국이)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중재나 조정에 관심이 없다. 그 사실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포함돼 있지만,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안보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안보 문제를 핑계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일본을 미국이 말린다면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호르무즈해협 경비연합체 구성 등 한국과의 ‘안보 비용 협상’을 앞둔 미국이 한·일 갈등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협상력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다만 미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선에서 갈등 확산을 막으려는 시도는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중재한다고 해서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한국 제외 결정을 철회하거나 시행을 늦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미국이 역할을 한다면 하위 레벨에서 갈등이 확전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이번 결정으로 수출대상국 분류에서 B그룹으로 내려앉은 한국이 A그룹에 준하는 수출 관련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가능한 옵션으로 거론된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