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졌다. 7월에 시작된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 수출 규제만큼 위협적이진 않지만, 공급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4일 “부정적 전망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대응책을 마련하면 되는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 입장에선 계획을 짤 수가 없어서 정말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일본 외에 다른 기업을 찾았는데, 일본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출을 하면 이중으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소재를 공급받던 업체들은 비상 경영에 나서며 소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단기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되는 분야는 화학업계다.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면서 통제할 수 있는 857개 품목 중 159개를 집중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 화학제품이 40여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우리나라 주요 화학 기업들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4대 주요 소재로 꼽히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은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수주한 전기차 배터리를 정상적으로 생산하려면 소재 공급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소재 공급이 끊어지면 단기적으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비중이 크지 않지만 배터리 파우치, 양극바인더, 음극바인더 등은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배터리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동박은 일본 의존도가 높진 않지만, 동박 제조 설비에 대한 의존도는 높다.
7월 한 달 간 일본에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을 전혀 공급받지 못한 반도체 업체들은 대체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생산 라인에 투입할 수 있다면 수율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면서 “소재 공급이 중단될 경우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율이 높을수록 생산 단가가 내려가고 이는 반도체 가격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수율이 높아지면 결국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전 세계 반도체 생태계에 큰 부담을 주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여기에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웨이퍼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불안요소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넣어 만든다. 한국화학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신에츠화학공업(27%)과 섬코(26%) 등 일본 기업이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 실트로닉스, 한국 SK실트론 등도 있지만 일본이 수출을 막으면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수입한 웨이퍼가 약 4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전체 웨이퍼의 절반 이상을 일본 업체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