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작가 “일본 할머니들도 작품 보고 우셨는데…”

입력 2019-08-04 16:08 수정 2019-08-04 19:52
“쓰다 다이스케 예술감독이 전시 중단 조치와 관련해 사전에 양해를 구한 적도, 사과 한마디 한 적 없습니다.”
중앙대 조소과 출신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공동 제작한 부부 작가 김운성·김서경씨. 두 사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20주년을 기념해 2011년 평화의 소녀상을 처음 제작했다. 작가 제공

일본 아이치현 일대에서 지난 1일 개막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화제를 모았던 김운성(55)·김서경(54)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전시가 3일 만에 전격 중단됐다. 작품이 소개됐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에 대해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이 지난 3일 “테러 예고나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화나 메일이 와서 운영에 있어 안전이 우려된다”며 전시 중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지난 3일 개막 사흘 만에 전격 전시 중단 결정이 내려진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남편 김운성 작가와 소녀상을 공동 제작한 김서경 작가는 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해)불안은 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다니 참담하다. 처음 초청받았을 때는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카모토 유카가 기획한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은 일본에서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이다. 한국인으로는 안세홍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 작품이 포함됐다. 10여명의 일본 작가들의 작품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천황제 반대, 강제징용 희생자 추모비 등 한일 관계와 관련한 주제가 많았다. 오카모토 등 3인의 큐레이터는 지난 3일 저녁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역사적 폭거’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김 작가는 “우리도 일본 작가들과 함께 항의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다”며 “전시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여러 일본 작가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 전시 중단으로 대응하는 주최 측에 어처구니가 없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면서 “만약 올림픽이 이뤄지는데 테러 협박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올림픽을 중단하거나 하지는 않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작가는 쓰다 예술감독에 대해서도 “남녀평등을 위해 초청 작가의 남녀 성비 비율을 반반씩 했다고 들었는데,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평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다”고 비판했다.

소녀상에 대한 현지 관람객들의 반응은 따뜻했다고 했다. 소녀상의 앳된 모습을 본 한 관람객은 “(논란이 된 게) 이거냐”며 반색했고, 어떤 일본인 할머니는 “전쟁은 여성과 어린이를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든다. 전쟁은 더 없어져야 한다”며 소녀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시 중단 결정이 알려진 3일에는 전시장 입구에 관람객들이 몰리며 장사진을 쳤다. 소녀상이 일본에서 전시 도중 철거된 것은 2012년 도쿄 도립미술관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한편, '평화의 소녀상' 등의 전시 중단 조치에 항의해 본전시에 참여한 박찬경·임민욱 작가도 전날 트리엔날레 사무국에 이메일을 보내 자신들의 작품 철거 및 전시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