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에 대응해 국내 기업을 지원 사격하고 나섰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 주고, 신규 유동성을 늘려준다. 수입 대체로를 찾는 기업에 2조원을 투입한다. 수입 다변화 지원 대상에는 대기업도 포함된다. 시중은행들도 대출금리 인하,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책에 시동을 걸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국내 피해기업 살리기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갑작스런 경제보복으로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의 ‘우산’을 뺏지 않겠다는 취지다. 은행들은 이르면 5일부터 중소·중견기업에 새 자금을 지원하고 대출 금리를 최대 2.0% 포인트 깎아준다.
우리은행은 총 3조원 상당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표적 피해산업의 협력사 지원에 1조원 규모의 상생대출을 투입한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특별출연해 5일부터 5000억원 규모의 여신을 지원하고, 이후 2020년까지 1조5000억원 규모를 추가 지원할 방침이다.
신한은행도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총 1조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지원한다. 신규·연장 대출의 경우 최고 1% 포인트까지 금리를 낮춰주고, 피해기업의 기존 대출 상환일도 유예할 방침이다.
KB국민은행은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제공해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 만기가 도래한 대출의 상환을 늦춰주고, 최대 2% 포인트까지 대출 금리를 내려줄 계획이다. 피해기업에 환율 우대 및 외국환 관련 수수료 감면·면제 혜택도 주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5일부터 일본산 소재·부품 수입 기업에 할부 상환금 납입을 최대 12개월 유예한다. 신규 대출이나 상환 연기 시 대출 금리도 0.3% 포인트 인하한다. KEB하나은행도 피해기업을 비롯해 임직원에게도 최대 1.0% 포인트 대출금리 우대 혜택을 제공하고 수수료 감면, 대출 연장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정책금융기관, 시중은행 등과 ‘일본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를 열고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품목을 수입·구매하는 우리 기업의 자금 상환부담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대출·보증 만기 연장 등의 방안을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먼저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규제 품목’ 수입 기업에 대해 기존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한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규제 대상 품목을 수입·구매하거나 ‘일본 화이트 리스트 배제’ 관련 피해 사실이 확인된 기업 등이 대상이다. 이들 기업에는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의 만기가 1년간 전액 연장된다. 수출입은행은 규제 품목을 수입하려는 기업의 경우 수입 자금 대출 한도를 기존 80%에서 90%까지 늘려준다. 대기업에 0.2% 포인트, 중소기업에 0.5% 포인트 대출 금리를 낮춰 준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수입보험 한도 우대와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돈맥경화’가 우려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에 신규 자금도 수혈한다. 기존 특별자금‧경영안정자금(2조9000억원)을 피해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새로운 자금 지원 프로그램(3조8000억원)을 만들어 중소·중견기업에 제공할 방침이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설 자금, 보증 지원을 강화하고 해외 기업 인수·합병(M&A)도 돕는다.
양민철 최지웅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