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홍콩에서 시위대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1일 시위대가 중국 국가 휘장을 검은색 페인트로 훼손한데 이어 오성홍기까지 바다에 빠뜨리자 중국 관영 매체는 “미처날뛰는 폭도”라고 강력 비난했다. 국가 휘장 훼손 행위에 대해 “일국양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고 경고하며 군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중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4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일부 홍콩 시위대가 3일 오후 5시 40분쯤 홍콩 부두의 국기 게양대에 홍콩기 등과 함께 걸려있던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던졌다. 이어 시위대 2명이 한자와 영어로 ‘홍콩 독립’을 새긴 깃발을 들고 국기 게양대 옆에 서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날 시위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성조기는 최근 홍콩 시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오성홍기가 바다에 버려진 사실을 알게된 애국단체 ‘애항행동’ 소속 시민 10여명이 이날 자정쯤 오성홍기가 떼어진 국기게양대에 모여 새 중국 국기를 깃대에 올리는 게양식을 가졌다. ‘애항행동’을 이끄는 천징싱(여)는 “시위대가 국기를 깃대에서 떼어내 바다에 던지는 것을 알고 분통을 터트렸다”며 “그래서 다른 몇몇 ‘애국애항’하는 홍콩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국기 게양식을 하러 왔다”고 환구시보에 말했다.
‘애항행동’ 소속 시민들은 지난달 25일 홍콩주재 미국영사관 앞에서 “외부세력은 홍콩에서 물러가라” “미국의 홍콩 내정 간섭을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환구시보는 사평에서 오성홍기를 훼손한 시위대를 향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일부 폭도”라고 비판하며 홍콩 경찰은 이런 시위대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오성홍기 훼손뿐 아니라 경찰서와 경찰 차량 등도 불에 탔다”며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을 체포하는 것은 경찰의 권리이고,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경찰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홍콩 시위대는 지난 21일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의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색 페인트를 던져 훼손하며 중국 중앙정부를 자극했다.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홍콩 정부가 요청하면 인민해방군이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첫 주말인 3일에도 홍콩 몽콕 지역에서 진행된 반정부 집회에 주최측 추산 12만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유명 쇼핑가인 몽콕 일대를 행진하며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깃발이나 성조기를 흔들기도 했다.
금요일인 지난 2일에는 금융인 4300여 명이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는 등 시위가 각계각층으로 확산하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금융인들은 태풍으로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홍콩을 되찾자’, ‘시대 혁명’, ‘홍콩 총파업’ 등의 구호를 외쳤다. HSBC, 스탠다드차타드, 씨티, JP모건, 시틱은행 등 34개 금융기관 종사자 400여 명은 5일 총파업에 동참하자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기도 했다. 금융인뿐아니라 공무원, 교사, 항공 승무원, 예술가 등 각계 종사자들은 5일 총파업을 벌이고 홍콩 전역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홍콩 공무원 4만여 명은 3일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공무원도 시민과 함께 간다’ 집회를 열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화한 홍콩에서 이런 집회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집회 참여 인원도 당초 예상했던 2000명을 넘어선 4만여 명에 달해 홍콩 정부를 긴장시켰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 1만여 명(주최 측 추산)도 센트럴 에든버러 광장에서 송환법 철회와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시위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침사추이 지역 경찰서 등을 훼손하고,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등 과격 양상을 보이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다.
경찰은 성명을 통해 “대규모 과격 시위대가 경찰서 주변에 계속 모여들었고 경찰서 여러 곳에 방화했다”며“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시위대가 차량 여러 대를 훼손하고 경찰서 건물로 벽돌 등을 던져 공공시설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누군가 경찰서 외부에 종이 박스 등을 모아 불을 지르는 바람에 소방차가 출동해 진화하기도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