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공무원이 잦은 수사민원 등으로 인한 공무상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경우 과거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더라도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박성규)는 전직 경찰관 A씨의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순직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1988년 순경 공채로 경찰 공무원에 임용됐다.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2017년 1월 한 경찰서의 지능범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뒤부터였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잇따른 민원에 시달렸다. 압수수색 과정이 부적절했다거나 수사 과정에서 허위 조서가 작성됐다며 CCTV를 요구하는 민원이 들어왔다. 한 민원인은 수사관이 수사 의지가 없다며 교체해달라고 하거나,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며 재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A씨는 불면, 불안 증세 등을 호소하며 2017년 6월부터 정신과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11월 두통 때문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고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A씨가 재직 중 공무상 질병으로 사망했다며 순직유족급여와 함께 공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A씨의 우울증이 직무수행과 인과관계가 없다며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A씨의 건강보험 급여를 살펴본 결과 1999년에 우울증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보다 개인적 성향 등 공무외적 요소가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였다. 유족들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는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악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정상적 인식 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과거 우울증 치료 경력에 대해서도 인사혁신처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2015년 마지막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 2년만에 진료를 받았다”며 “기존 정신과 진료 내역도 공무와 무관한 요인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초부터 받은 공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할 때까지 집중적으로 우울증 발병·악화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