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폭행, 아이 유괴, 강제 추행… 조현병 환자 범죄 잇달아

입력 2019-08-04 06:50 수정 2019-08-04 16:09
뉴시스(좌측) JTBC 영상 캡처(우측)

산책하던 80대 노인을 이유 없이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마트에서 계산하는 사이 아이를 데려간 50대 여성, 길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여성을 강제 추행한 40대 남성, 이들은 모두 조현병 환자다.

지난 4월 경남 진주 방화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에 이어 조현병 환자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대중들의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고조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엄마 옆에 있는데 아이 데려간 50대 여성

JTBC는 지난달 27일 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한 마트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던 50대 여성이 3세 남자아이를 유괴하려다 40분 만에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며 당시 상황이 담긴 마트 내 CCTV영상(https://news.v.daum.net/v/20190803211425376)을 3일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을 살펴보면 모자와 마스크를 쓴 50대 여성이 마트로 들어와 주황색 옷을 입은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이 여성은 아이를 지나치려다 다시 옆에 선다. 아이 앞에는 초등학생 형과 엄마가 물건을 계산대에 올리고 있다.

여성은 주변을 살피더니 갑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 뒤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잠시 후 계산을 마친 엄마가 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황급히 찾아다닌다. 아이가 사라지기까지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놀라 아이를 찾아다니는 엄마를 본 마트 직원이 아이가 뒷문으로 나간 것 같다고 알려준다. 엄마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를 데려간 여성은 마트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까지 아이를 데려왔다. 주변을 살피던 경찰이 자신을 발견하자 다른 쪽으로 도망가려다 붙잡혔다. 아이가 사라진 지 40분 만이다.

경찰 조사 결과 여성은 조현병 환자로 ‘이 아이는 엄마를 싫어한다’ ‘아는 애라 데려왔다’며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여성이 질병이 있고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경찰은 여성을 입원시키고 약취·유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길에서 흉기 휘두른 40대 남성 집행유예

지난 3월에도 길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여성을 강제 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40대 조현병 환자다.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단독(박정길 부장판사)은 특수상해·강제추행·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42)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

이씨는 지난 3월 8일 오전 5시16분 서울 광진구의 한 거리에서 부엌칼과 가위, 목검 등 흉기를 들고 지나가던 남성 A씨(29)를 위협하다 칼로 손가락을 베어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이씨는 편의점에 들어가 점원 B씨에게도 “죽일 사람이 있냐. 같이 죽이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당하자 흉기로 위협하고 목검으로 점원의 머리와 얼굴을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사람을 모두 없애 혼자 살아남아 세상의 왕이 되자’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챙겨 나와 범행을 저질렀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8월 경북 김천시의 한 미용실에 들어가 혼자 일하던 20대 여직원 C씨를 강제 추행하고 C씨가 미용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6분 동안 감금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치료병력에 비춰 피고인은 망상, 환청, 감정, 충동, 행동 조절이 어려운 증상의 조현병 환자로서 이러한 병적 상태가 각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상해를 가하고 추행하는 등 각 범행의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각 범행을 모두 자백해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상해와 강제추행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은 점, 문 잠금장치가 고장 나 실제 출입문이 잠기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며 “보호관찰기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 재범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80대 노인 묻지마 폭행으로 숨졌지만 ‘살인’ 아닌 ‘상해치사’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에도 20대 조현병 환자가 8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지만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모(29)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의 한 길거리에서 산책하던 여성 A씨(82)를 막아선 뒤 넘어뜨려 폭행해 숨지게 하고 이를 말리던 B씨(75)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당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달아나려 하던 A씨에게 다가가 얼굴과 머리 부위를 8차례나 세게 걷어차는 등 무차별 폭행을 저질렀다. A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올해 1월 27일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바닥에 넘어진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 등을 집중적으로 걷어차는 등 잔혹하게 범행했다”며 “피해자는 키 184㎝, 몸무게 125㎏에 달하는 거구로 피고인의 폭행에 저항 못 한 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다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유죄를 선고한 점에 대해 “범행 동기나 경위, 과정, 수단과 방법, 피고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심신미약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17일 진주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방화범 안인득은 물론 6월 4일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해 예비신부를 숨지게 한 운전자도 조현병 환자였다.

이처럼 조현병 환자들의 묻지마 범죄가 계속되자 대중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 이들은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철저한 격리 조치를 촉구하는 한편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거나 선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형법에선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심신미약자에 대해서는 감형하도록 책임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