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감당 어려워”… 없어지는 지상파 월화극, 왜?

입력 2019-08-03 12:34 수정 2019-08-03 14:49
지상파 방송 3사. 연합뉴스


지상파 3사의 월화드라마가 일제히 잠정중단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지상파 드라마 위기론이 현실화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계속된 재정난에 따른 몸집 줄이기의 일환인데, 오랜 시간 시청패턴으로 굳어져 온 월화드라마 중단 소식에 콘텐츠 수용자인 시청자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KBS는 2일 “채널 2TV 월화극 폐지가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 동안 월화드라마를 중단하는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화드라마 중단 시기 동안 편성될 프로그램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KBS는 오는 5일 첫 전파를 타는 ‘너의 노래를 들려줘’가 종영한 이후 9월 방송 예정인 ‘조선로코-녹두전’ 다음 작품을 확정하지 않았다. 내년 3월 방송 재개까지 재정비 시간을 가짐으로써 질 높은 작품을 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다른 지상파도 KBS에 앞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다. MBC는 공격적 편성 전략과 월화극 잠정 중단 카드를 동시에 빼 들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월화극과 수목극 모두 10시 라인에서 앞당겨 9시에 편성했다. 타 방송사보다 미니시리즈를 1시간 당겨 잡음으로써 시청률 틈새시장을 노린 전략이었다.

안판석 감독의 신작 ‘봄밤’과 시즌제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가 첫 실험작이었는데, 당시 MBC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변해가는 드라마 시장 정상화를 위한 조치와 시청자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의미를 뒀다”고 했다. 월화극도 5일 처음 방송되는 정지훈(비) 주연의 ‘웰컴2라이프’ 이후 당분간 편성되지 않을 예정이다.


'조선 로코-녹두전'(KBS2) 주인공 김소현(왼쪽), 장동윤. 각 소속사 제공


SBS는 지난 6월 끝맺은 월화극 ‘초면에 사랑합니다’ 이후 ‘월화 10시 예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인다. 오는 12일 첫 전파를 타는 ‘리틀 포레스트’가 그것이다. 이서진 이승기 박나래 정소민이 청정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담았다.

그렇다면 오랜 역사를 가진 월화드라마가 이처럼 속속들이 중단에 들어가는 까닭은 뭘까. 재정 악화가 그 이유로 꼽힌다. KBS와 MBC는 최근 대규모 적자가 예고되면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공영 방송사 모두 비상경영에 들어가는 이례적 상황을 맞은 것이다.

KBS의 올해 사업 손실액은 1019억원으로 예측되며 2023년까지 누적 손실액은 6569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미니시리즈 시간을 현행 70분에서 50분으로 줄이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MBC도 올해 적자 규모가 800억~900억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잇따른 프로그램 폐지와 축소는 제작비 폭증 등 적자에 따른 몸집 줄이기인 셈이다. SBS의 10시 예능 전략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방송사들 저마다 제작비 감당이 어려워지고 있다. 드라마를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덜 들어가는) 예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게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했다.


'검법남녀'(MBC)의 한 장면. MBC 제공


한 작품에 적게는 십여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들어가는 드라마는 시장이 과열되면서 방송사에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됐다. 제작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수익은 담보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매체가 많아지면서 지상파가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독점적 위치가 흔들리게 된 데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 진출과 핸드폰으로 인한 시청 환경 변화 등 객관적 환경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를 보여주는 확연한 지표가 바로 광고 매출의 하락이다. MBC는 최근 비상경영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나 ‘검법남녀’가 같은 시간대 시청률에서 정상을 달렸으면서도 수익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지상파 3사는 타개책으로 중간광고 도입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지상파가 종편, 케이블과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비대칭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능희 MBC 기획조정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한 기자간담회에서 “콘텐츠를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지상파 광고 시장도 축소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케이블이나 종편은 상향하고 있다”며 “비대칭 규제가 중간 광고로 연결된다. 공정하게 경쟁하는 광고 시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은 지상파의 숙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변화된 시청자들에 맞춘 퀄리티 높은 작품을 낼 방송사 구조를 갖추는 게 핵심이라는 견해도 있다. 후발 주자로 나선 종편과 케이블이 갈고 닦은 장르물과 빅 캐스팅을 통해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반면, 지상파 드라마들은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작 관성에 기댄 기존 문법의 답습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이 같은 공중파의 휴식기가 극적인 도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외적 구조의 개선과 함께 치열한 내적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