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에 대응해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 등 수출규제 및 보복조치 관련’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간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맞대응을 자제해 왔으나, 일본 정부가 끝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내린 이상 우리 측도 ‘액션’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결코 바라지 않았던 일이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부총리는 “한국은 일본을 포함한 29개 국가를 백색국가로 지정하고 있다”며 “검토를 거쳐 (일본을 이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가 국제법상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와 같은 수출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백색국가에 해당하는 ‘가’ 지역은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을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 국가로, 일본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이 들어있다.
홍 부총리는 일본에 대해 우선 국민 안전과 관련한 관광, 식품, 폐기물 등 분야부터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전면 위배되는 조치인 만큼 WTO 제소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와 관련된 전략물자의 수는 1194개이며, 이 중 국내 미사용 및 일본 내 미생산, 소량 사용 또는 대체 수입 등으로 배제 영향이 크지 않는 품목들을 제외하면 모두 159개의 품목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홍 부총리는 “159개 전 품목을 관리품목으로 지정해 대응하되, 특히 대일 의존도, 파급 효과, 국내외 대체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세분화해 맞춤형으로 밀착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이날 전략물자관리원 관련 전용 홈페이지(http://japan.kosti.or.kr)를 개설해 일본의 수출규제와 그에 따른 영향, 정부 지원 내용 등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수출규제 관련 품목 반입 시 신속히 통관 절차를 통과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통관 지원 체제를 가동하고, 서류 제출 및 검사 선별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해외 대체 공급처를 발굴할 수 있도록 조사비용 중 자부담을 50% 이상 경감하는 등 현지 활동을 지원하고, 대체 수입처 확보를 도와주는 거점 무역관을 각 지역별로 운영할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수출규제 대응이 필요한 업체에 대해 제품 개발 R&D 등 꼭 필요한 부분의 경우 한시적으로 화학물질 등의 인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며 “특별연장근로 인가 및 재량근로제 활용도 적극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R&D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일본의 수출통제로 인해 대체국에서 해당 물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할 경우 기존 관세를 40%포인트까지 깎아주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피해기업 대상 대출‧보증 만기연장도 추진되며, 최대 6조원의 운전자금을 추가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홍 부총리는 거듭 일본 정부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역사적·사법적 사안에 대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보복을 가한 잘못된 조치”라며 “조치의 근거도 일관성 없이 계속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한·일 간 공동번영의 전제였던 호혜적 협력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분업·협업·경쟁을 통해 유지돼 온 양국의 경협 파트너십을 돌이키기 힘든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글로벌 밸류체인을 교란해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