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자사고) 무더기 지정 취소 사태가 현실화됐다. 서울에서만 올해 9곳이 일반고로 전환될 처지에 놓였으며 최종 판단은 법정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중3 교실은 물론이고 자사고 재학생들도 동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교육 당국이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가 2일 일반고 전환을 허가한 학교는 모두 10곳이다. 서울에선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중앙고 이대부고 한대부고, 부산에선 해운대고다. 서울 경문고는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가 허가했다. 교육부는 “서울과 부산 교육청의 평가는 적법하고 적절했다”고 평가했으며, 자사고 측의 이의제기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사고 측은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자사고들은 교육부 결정에 대비해 법무법인을 공동 선임하고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해운대고도 마찬가지다. 자사고 학교장과 학부모, 동문, 시민단체 등이 모인 자사고공동체연합회는 “밀실에서 야합한 깜깜이 정치 평가였다”라면서 “즉각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으로 무력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선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교육 당국 결정으로 학생과 자사고 측에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가 갈 수 있고 법적으로 다퉈볼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자사고들은 자사고 신분을 유지한 채 올해 전형을 시행하게 된다. 이 경우 본안 판결이 나오기까지 고교 입시에선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진다. 학생·학부모 입장에선 진학하려는 학교가 소송에 휘말린 상태여서 고민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특히 서울 지역은 9개나 되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됐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집계에 따르면 이들 9개교의 입학 정원을 합치면 3194명이다(2019학년도 기준). 서울 중3 학생 수 7만2385명 대비 4.4%에 해당한다.
입시업계에선 현재 중2, 3뿐 아니라 자사고 재학생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올해 지정 취소 결정을 받은 서울 자사고의 학생 수는 8665명이다. ‘불량 자사고’로 낙인찍힌 이들 학교의 학생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다. 입시가 임박한 3학년 3018명은 어쩔 수 없더라도 1, 2학년은 전학도 고민할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 입시업계에선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종합전형 등에서 학교 평판에 따라 고교 내신 성적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사실상의 고교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목고에서 내신 3등급 학생을 일반고 1등급 학생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방식이다. 이번 평가로 평판이 하락한 고교에 계속 남아 있을지 고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학종의 특성상 ‘고교 평판 하락=대입 불리’로 간주할 수 있다. 대신 이번 평가에서 살아남은 하나고 상산고 민족사관고 등은 입시 명문으로 더욱 탄탄한 입지를 갖게 됐다. 이들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사교육 저연령화도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발적 일반고 전환이 아닌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된 학교라는 이미지가 대학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냐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서울 지역에서) 무더기 전학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자사고에서 나온 학생들이 주변 일반고로 퍼질 경우 기존 일반고 학생들의 내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내년에는 올해보다 많은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재지정 평가가 예정돼 있다. 문재인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여서 무더기 탈락 사태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중2 학생들도 올해 3학년과 같은 혼란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교육계에선 “자사고 폐지보다 이를 수습하는 정책과 일반고 대책이 더 중요하다. 현재로선 교육 당국이 폐지에만 힘을 쏟는 모습”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반고 전환 학교에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해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자사고 일반고 전환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며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을 8월 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