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팬티를 백두 번 내리고
거기에 천사백삼십팔 번 입맞춘다
내 팬티를 천칠십 번 내리고
당신이 주는 만 칠천오백구십삼 번의 매질을 받는다
이 시에 나오는 숫자의 합은 얼마인가?
전자계산기는 이만 이백삼이라고 말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산술적인 답이지
시는 그런 답을 선물하지 않는다
저런 시를 쓴 사람은 시인 장정일(57)이다. 작품이 담긴 책의 제목은 ‘눈 속의 구조대’(민음사). 이 시집은 칼럼니스트로, 에세이스트로, 소설가로 두루 명성을 얻은 장정일이 본업인 시인으로 컴백해 내놓은 작품이다. 그가 시집을 펴낸 건 ‘천국에 못 가는 이유’ 이후 무려 28년 만. 책을 읽으면 “한국 시의 돌격용 소총이나 같았던” 그의 파워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책에는 그 흔한 동료 문인의 추천사도, 평론가의 해설도, ‘작가의 말’도 담기지 않았다. 50여편의 시를 기다랗게 늘어놓았을 뿐이다. 자극적인 시어로 선득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위악과 자책으로 작품 곳곳에 얼룩 같은 무늬를 남겨놓는 특유의 작법은 여전하다.
장정일의 오랜 팬이라면 ‘양계장 힙합’ 같은 작품을 읽을 때 아련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정이면 멍해질 거야. 양계장의 닭들은 너무 바보같이 살아서 자기가 알인지 닭인지도 모를거야”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가 1999년 펴낸 장편소설 ‘보트하우스’의 도입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이 시의 말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과격한 표현과 폭력적인 묘사가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라는 게 항상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케이크 같아서야 되겠는가. 시집을 읽으면 ‘시인 장정일’의 귀환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첫눈’이라는 시는 작가의 신산했던 삶을 드러내면서 장정일이 어떤 작가인지 되새기게 해준다. 전문을 소개할 순 없으니 마지막 연만 옮겨보자.
밟아라, 밟아라
나는 도둑의 발자국도 다정하게 안아주는 첫눈이 아니냐?
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다오
내가 만든 풍경을 독자여
완성시켜 다오
밟혀도 소리 내지 않고 울부짖지 않는
밟히면서 사라지는
나는 첫눈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