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은 경기 대응 및 민생 지원 예산 4조 5000억원, 미세먼지 저감과 재해·재난 복구 및 예방 예산 2조 2000억원 등이다. 여야는 이날 막판까지 전체 예산의 감액 규모와 적자 국채발행 규모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 추경안의 적자 국채발행 규모는 3조 6000억원에 달한다”며 “국민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국채 발행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은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전체 예산 중 총선용 선심성 예산으로 추정되는 일자리 관련 예산 등 약 3조원 삭감을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현 상황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엄중한 시국이라며 삭감을 최소화한 6조원 이상으로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번 추경은 강원 고성 산불, 포항 지진, 미세먼지 관련 재해·재난대책과 경기 하방에 대처하기 위해 고용위기 지역과 일자리 등에 쓰는 선제적 대응 예산”이라며 “또 경제 한·일전에서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인 만큼 우리가 적극적으로 처리해야 국민도 든든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도 최근 역대 추경 처리 과정에서 한국당의 요구만큼 순감액된 전례가 없다고 반박했다.
여야는 정부가 요구한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예산 2732억원을 놓고도 논쟁을 벌였다. 김재원 위원장은 “일본이 오늘내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내리는데 이 예산으로 용역을 발주해 수입을 대체하는 것이 어느 세월에 가능하냐”며 “이는 옹기장수가 부자가 된다는 대책보다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간사는 심사 과정에서 유례없는 경우일수록 명확한 원칙과 시기별 예산 책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수출규제 대응예산을 4762억원까지 늘리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결국 날선 공방 끝에 여야는 2732억원 그대로 통과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 위원장 간에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견해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면서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4시, 8시로 연기되다 결국 자정을 넘길 때까지 열리지 못했다. 여야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본회의 소집령을 내렸고, 의원들은 국회 주변에서 대기했다. 밤늦게까지 교섭단체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각자 의총을 열고, 민주당과 한국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답답하고 한심해서 이 자리에 섰다”며 “국회에서 추경 숫자놀이로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본회의를 빨리 열어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여야는 이날 오후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 및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결의안과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 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을 외교통상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본회의가 늦어지면서 두 결의안과 더불어 여야가 전날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140여개 민생법안의 처리 또한 미뤄졌다.
김나래 심희정 박재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