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체크리스트”라는데 블랙리스트 기소한 동부지검 지휘부 ‘전멸’

입력 2019-08-02 00:10
‘살아있는 권력’ 수사했던 검사들 연이어 인사 고배·좌천성 인사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지난 2월 19일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부처가 산하 공공기관 관리·감독 차원에서 작성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체크리스트’”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가 맡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한창일 때 나온 메시지였다. 수사 초기 관망세를 보이던 청와대는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출국금지하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개입 의혹에도 손을 대려하자 대응에 나섰다.

여당 역시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에 대한 평가와 관리·감독을 하는 것은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적법한 감독권의 행사”라고 가세했다. 당연히 야당 쪽은 “청와대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렸다”라며 크게 반발했다.

청와대는 3월 22일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도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수사 내용과 방향에 대해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재판부나 수사팀 모두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동부지검은 4월 25일 김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흐른 현재, 문재인정부와 관련된 첫 ‘적폐수사’라 할 수 있는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수사했던 동부지검 지휘라인은 아무도 검찰에 남지 않게 됐다. 앞서 사표를 낸 한찬식 검사장과 권순철 차장검사에 이어 주진우 부장검사마저 1일 사의를 표명했다. 3명 모두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거나, 한직으로 인사 전보가 난 상황이었다.

인사를 단행한 법무부는 별도의 설명을 달지 않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청와대에 칼을 겨눈 결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짙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의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오는 6일자로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났던 주 부장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인사 글에서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 능력·실적·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단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검토와 토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충돌할 땐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적었다. 특히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며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 부장검사는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었으며, 여권에서 이 이력을 두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할 뿐, 여야를 안 가리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를 때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했다”고도 했다. 자신에 대한 인사 발령을 정치적 이유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루 먼저 사의를 표한 권 차장검사는 수사 일선에서 비껴난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 명령이 내려온 상태였다. 그는 사직인사에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양심적인 판단에 어긋나게 처리하는 사건이나 결정은 없었다”며 “검찰을 떠나서도 검찰 구성원 한분, 한분 바르게 정의를 실현하시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직속상관이던 한 검사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을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사의를 밝혔다. 그는 “검찰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돼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고 구성원들이 합심해 노력한다면 앞으로 여러 난관을 잘 헤쳐가리라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동부지검뿐 아니라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해 손 의원을 불구속 기소한 서울남부지검 지휘부도 고배를 마셨다. 권익환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에 탈락하고 사표를 냈으며, 김범기 2차장검사는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발령 났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줄 똑바로 서라는 청와대의 메시지”라고 최근 검찰 인사를 촌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히 대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