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똑같이 수사했다… 공직관 흔들려 떠난다”

입력 2019-08-01 18:19 수정 2019-08-01 19:41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1일 오후 차장실을 찾아 권순철 차장 앞에 섰다. 주 부장은 “사전에 상의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결심을 했다”고 마지막 보고를 올렸다. 권 차장이 “공소유지 업무가 남아 있지 않느냐”며 말렸지만 끝내 후배의 뜻을 꺾지 못했다. 권 차장부터가 전날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인사는 메시지다”며 사의를 표한 상태였다.

권 차장이 말한 공소유지 업무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의 재판 업무였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는 수사에서 주 부장은 주무 부장이었고, 권 차장은 지휘 라인이었다. 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기소됐다. 권 차장과 주 부장은 전날 법무부 인사에서 좌천을 확인했다. 권 차장은 서울고검 검사, 주 부장은 안동지청장이었다. 고검은 직접수사 비중이 낮은 한직으로 통한다. 안동지청은 검사가 5명인 소규모 지청이다.

주 부장은 검찰 내부망에 ‘사직인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며 “공직관이 흔들리고 있는데 검사 생활을 더 이어가는 것은 국민과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명예롭지도 않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주 부장은 “여야를 동일한 강도와 절차, 기준에 따라 수사할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글을 읽은 한 평검사는 “뼈 있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말했다.

주 부장은 2014년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 특별조사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했다. 주 부장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한 검사가 “검사 게시판에 들어오기가 무섭다, 훌륭한 분들이 나가신다”는 댓글을 달았다. 검찰총장 인사를 전후해 지난달부터 사의를 밝힌 검사들은 고위직부터 부장급까지 40명이 넘는다. 법무부 인사 직후 사표를 결심한 중간간부급만 20명에 가깝다. 기자들이 세는 사의 표명 검사의 숫자는 계속 불어났다.

검사들은 이날 내부망 게시판을 살펴보며 “이분도 사표를 내셨다”는 말을 반복했다. 인사철에 40명 이상의 검사가 옷을 벗은 사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검찰 구성원들은 입을 모았다. 한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장이 차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만큼 이번 인사는 이례적이다”고 했다. 검찰총장 인사부터가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차장검사급 신규보임 기수인 사법연수원 28~29기부터는 법원이든 검찰이든 ‘인사적체’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가운데 ‘끌어올릴 사람’이 있다 보니 무리하게 고검 등지로 보내지는 검사들도 많아졌다.

전면 배치된 특수와 달리 공안과 강력 분야에서는 줄사표가 나왔고, “계보가 흔들린다”는 말도 나왔다. 대검찰청 마약과장 출신인 김태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그동안 감사했다”며 단 2줄의 짧은 사직 인사를 올렸다. ‘강력통’으로 불리는 윤재필 서울고검 검사도 의원면직 명단에 올랐다. 김주필 수원지검 공안부장, 민기홍 인천지검 공안부장, 이헌주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 등 공안부장·공안기획과장 출신들의 사의 표명도 잇따랐다.

한 검찰 간부는 “이번 인사는 ‘특수통’의 약진이 아니고 ‘총장 친위부대’의 약진”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검찰총장은 더 이상 서울중앙지검장이 아니고 적폐사건만을 지휘하는 부서장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모두가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지만 인사 내용은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허경구 구자창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