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의 ‘포항지진’을 이용한 현수막 정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포항은 지난 2017년 11월 15일 일어난 지진 이후 지난해부터 시내 곳곳에 지진과 관련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해 3월 20일 정부가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지진이라는 발표 이후 현수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포항시 남구 대잠사거리는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15개가 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 정당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을 들어간 현수막을 3개까지 내붙여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 형산로타리와 우현사거리, 오광장 등 시내 곳곳에는 정당,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등이 내건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수막 대부분은 포항지진과 관련된 내용이다.
‘포항지진특별법 국회 산자위 상정’ ‘포항지진특별법안 발의’ ‘포항지진특별법 조속 제정 촉구’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주류를 이룬다.
이처럼 선거철에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연출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들이 내년 치러지는 총선에서 잇슈를 선점하고 자신을 알리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요즘은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번지면서 시민·사회단체 등이 너도나도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모(58)씨는 “내년 총선을 겨냥하고 포항지진을 이용하려는 정치마케팅이 도가 지나치다”면서 “현수막을 내 건 사람들이 진심으로 포항을 걱정하고 시민들의 아픔을 대변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김 모(59)씨도 “내년 총선을 겨냥해 자신들을 알리려는 방편으로 포항지진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지역 정치인들이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단속은 지지부진하다.
포항시민의 간절한 염원인 지진관련 특별법 제정 촉구 등의 문구로 인해 누구 하나 선뜻 철거를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53)씨는 “포항지진 관련 현수막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포항시민이면 모두 같을 것”이라며 “현수막이 불법이니 철거하라고 말하기도 찝찝하다”고 말했다.
지정 게시된 현수막을 제외하면 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인들이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지자체가 지정한 장소가 아니면 옥외광고법 위반이다.
단속하는 포항시 공무원들도 죽을 맛이다.
불법인 줄 알지만, 정치인 눈치, 시민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포항시 한 공무원은 “현수막 대부분이 포항지진 관련 내용으로 시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 때문에 단속하기가 애매하다”며 “최근 불법 현수막 관련 민원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양해를 구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