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청사 죽산 조봉암 태극기 퍼포먼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는…”

입력 2019-08-01 12:38 수정 2019-08-02 08:52
인천시청사에 내걸린 죽산 조봉암의 명문장. 태극기 문양을 활용해 빨간 글씨와 파란 글씨로 새겨 넣은 것이 이채롭다. 인천=정창교 기자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의 역사적 현장인 인천에서 죽산 조봉암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기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인천시청사 건물에 내걸린 태극기에는 죽산 조봉암의 어록이 고스란히 게재됐다.

죽산은 강화도 출신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농림부장관을 하면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땅을 몰수해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토지개혁을 성공시킨 진보당의 리더였다.

죽산은 대통령 선거에 두번 출마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했지만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가 사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한 바 있다.

인천시청사에 내걸린 태극기과 세로형 대형 플래카드에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는 돈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요.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 이기에, 아니하고서는 안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고 써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0주기입니다. 올해는 선생의 출생 120주년이기도 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일본 정부가 의도가 의심되는 경제적 침해를 강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국의 해방뿐만 아니라 식민 잔재의 청산을 위해 싸웠고,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국민을 위한 개혁과 진보의 정치를 펼쳤던 선생의 삶과 뜻을 흠모하는 마음이 올해는 유달리 각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입니다.

조봉암 선생에게 인천은 나고 자란 고향이자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입니다. 1919년 3월 18일 인천에서 가장 큰 만세운동이 강화군 강화읍내 장터에서 있었습니다. 이튿날 강화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당시 현장에 조봉암 선생도 있었습니다.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조봉암 선생에게 인천은 정치적 뿌리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제헌의회 민의원 선거에서 현재 부평, 계양, 서구 등지인 인천을구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1954년 민의원 선거에서는 입후보 등록 서류를 탈취당해 등록하지 못했지만, 선생이 진보당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던 곳도 인천을구였습니다.

인천이 낳은 선각자인 죽산 선생께서 바라 마지않으셨던,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 평화와 번영이 넘실대는 한반도를 위해 인천시도 시민들과 함께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하략)”라고 밝혔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