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이 중국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중왕(忠旺)그룹의 류중톈 창업자 겸 회장에 대해 밀수와 돈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류 회장에 대해 “부패한 사업가의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류 회장 기소는 장기간 중단됐다가 재개된 미·중 무역협상의 새로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은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압박에 맞서 시간을 끄는 장기전 태세로 돌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1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알류미늄 재벌’인 류 회장은 2011년 중국산 알루미늄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미국 세관을 속여 18억 달러(2조1400억 원) 규모의 탈세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또 자신의 대표기업인 중왕이 홍콩 증시에 상장할 때 회사 수익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류 회장에게는 금융사기, 돈세탁 혐의 등도 적용됐다.
검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기소장에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8억 달러의 관세를 미국으로부터 사취한 부패한 사업가의 부도덕하고 반경쟁적인 관행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수억달러 어치 허위 판매로 상장 기업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림으로써 전 세계 투자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범죄성은 미국 산업과 생계, 투자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류 회장의 관세 탈피 혐의 외에 중왕그룹이 미국내 고객들에게 알루미늄을 판매함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밀수 계획’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중왕이 수입한 알루미늄은 판매되지 않고 미국과 멕시코의 창고 시설에 쌓여있었는데, 이는 중왕 투자자들에 대한 사기극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밝혔다. 중왕그룹은 2009년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검찰은 류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그는 24가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최고 형량은 465년이다. 류 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에 대한 기소는 미국 정부가 중국에 부과중인 고율관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중국산 알루미늄과 철강 제품 등이 미국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앞서 2017년 중왕 그룹이 미국 알루미늄 기업 알레리스를 인수하려는 시도를 좌초시켰다.
류 회장이 2016년 8월 자동차 차체용 알루미늄 생산 확대를 위해 계열사 중왕USA가 알레리스를 23억3000만 달러(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사들인다고 발표하자 미국 내에서 인수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 의원 27명은 2017년 6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방산업체들의 민감한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수 있다면서 알레리스 매각을 인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인수에 실패한 중왕USA는 “더 이상 인수 합의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이는 미국 정부의 승인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왕그룹의 알레리스 인수 무산은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술 기업 인수를 잇따라 불허해온 연장선으로 해석됐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0~31일 상하이에서 재개된 미·중 무역협상이 별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전략을 수정해 장기전 태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무역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미국 농부들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어 기다리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타격이 크지만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내수 확대 정책을 통해 충격이 어느정도 흡수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트위터를 통해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이 얻는 합의가 현재 협상보다 훨씬 더 가혹하거나 아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거칠게 경고한 것도 중국의 태도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