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서울·부산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0곳의 일반고 전환 여부를 1일 심의한다. 대다수가 진보 교육계로부터 ‘고교 생태계 교란’ 학교로 지목된 ‘이명박표 자사고’들이다. 전북 상산고처럼 여야 정치권의 지원 사격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이어서 기사회생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교육부 심의 결과는 이르면 2일 발표된다.
교육부는 31일 “특수목적고 등 지정위원회를 1일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정위는 교육부 장관 자문기구로 특목고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여부를 심의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정위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교육부는 앞서 상산고와 안산동산고 등을 심의할 때처럼 지정위 개최 장소 등을 비공개하기로 했다.
이번 지정위 심의 대상은 모두 10곳이다. 서울교육청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중앙고 이대부고 한대부고, 부산교육청에서 낙제점을 받은 해운대고,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한 서울 경문고다.
교육계에선 교육부가 10곳 모두 ‘동의’ 결정으로 일반고 전환을 허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서울 지역 9곳은 이명박정부에서 만들어진 자사고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서울 지역 자사고들이 문제”라고 말해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실질적 타깃이 서울 자사고란 분석이 나왔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진보 교육계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는 부분이다.
부산 해운대고의 경우 김대중정부에서 만들어진 원조 자사고 중 하나였다. 상산고나 민족사관고처럼 전국에서 학생을 뽑아오다 이명박정부 때 지역인재 유출을 막는다는 취지 등으로 광역단위(부산) 모집으로 전환했다. 이후 대입 실적 등에서 내리막을 걸었으며 올해 부산교육청 평가에서 탈락했다. 서울 자사고들처럼 ‘타깃’이 된 학교는 아니지만 평가기준점 70점에 한참 모자란 54.5점을 받았다. 서울과 부산교육청은 전북교육청과 달리 교육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반영해 평가했다. 따라서 교육부 심의에서 일부 하자가 발견되더라도 15점 넘는 점수차를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자사고 10곳을 둘러싼 정치적 여건도 상산고와 달리 암울하기만 하다. 상산고의 경우 전북 지역 정치권이 들고 일어났으며 여야 의원 151명이 “일반고 전환 반대”라며 유 부총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셈법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반면 서울과 부산 정치권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을 제외하면 ‘자사고 지킴이’를 자처하는 의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도 서울·부산교육청과 각을 세우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교육부 ‘부동의’ 결정은 교육청 평가를 뒤집는 일이어서 교육감 입장에선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이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승환 전북교육감과는 ‘적’이 된 상황이다. 김 교육감은 교육부에 “전북교육청은 물론이고 교육감협의회 차원의 협조를 기대하지 말라”며 선전포고한 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교육청 평가를 존중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초중등 권한 교육청 이양’ ‘자사고 폐지’ 등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을 무릅쓰고 일부를 자사고로 유지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교육계에선 무더기 자사고 지정 취소 사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효과 측면에선 의문 부호가 찍힌다. 정부는 고교서열화가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실질적으로 입시 명문으로 행세하는 ‘힘 있는’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전부 살아남았다. 이번 평가에서 살아남은 학교들은 입시 명문으로 입지를 굳히게 됐으며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사교육 저연령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란 비관론도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다음 달 일반고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자사고 때리기만 하지 말고 일반고 대책부터 내놓으라’는 여론에 다소 서두르는 모습이다. 하지만 내신 성적 등 대입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입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일반고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입시 위주 교육은 불가피하다. 특히 공교육이 사교육 경쟁력을 압도할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사교육비 부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