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리포트-현장기자] 불편한 일본, 불편한 한국

입력 2019-08-01 00:04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타워에서 지난 24일 일본인 대학생들을 만났다. 사진은 박세원 기자.

“사실 일본 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기 전까진 일본에 오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얘기를 들어보지 않고 무작정 싫어해도 되나 싶더라고요. 막상 일본인들의 적나라한 생각을 들으니 불편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는데, 그게 이해되는 제 모습도 혼란스러웠고요.” 일본 도쿄에서 지난 25일 일한대학생미래회의(JKSFF) 학생들과의 식사를 마무리하며 다 함께 소감을 털어놓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복잡했던 지난 며칠간 나의 심경을 요약한 것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지난 22일부터 일주일 동안 일본을 다녀왔다. 지식인부터 대학생, 일반인까지 다양한 일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내내 당황한 표정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답변을 들으며 한일 간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는 “피해자를 왜 동상으로 만드는지 공감이 안 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라는 건 감정적인 것 아닌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 묻자 “일본은 한국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안 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아베 정부의 정치적 행동이라면서도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겼기 때문에 타당한 조치라고 봤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답변에서는 악의보다 무관심과 무지가 느껴졌다. 많은 일본 대학생들은 “정말 모르겠다”며 한국 측 입장을 궁금해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공부해야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정치와 문화는 떼어 놓고 봐야 한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일본인들을 향해 “무지도 죄”라며 혀를 찼다. 반면 일본에서 15년간 강의를 한 김경묵 와세다대 교수는 “모르는 건 탓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공감하고 배우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뭔가 희망찬 얘기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답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 지식인들마저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과 청구권 협정을 동시에 존중하는 묘안을 내놔야 한다”거나 “결국엔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식의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한 방안을 언급했다.

JKSFF 소속의 일본인 대학생 두 명은 조금은 긍정적인 미래를 제시했다. “지금은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부모님 세대가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20대는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 우리 세대가 힘을 갖게 되면 한일 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일본을 취재했던 일주일간 들었던 답변 중 가장 희망적인 말이었다.

김 교수는 “나라에서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면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적으로 설정하는 게 편하다. 경색 국면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일본과 한국의 반응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치와 언론도 일본을 적으로 묘사했고, 일본인을 이해하려는 한국인도 드물었다. 정치적 계산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도 일본을 이해하지 않는 게 편한 게 아닐까.

백팩리포트=국민일보 1~3년차 청년 기자들이 백팩을 둘러메고 세계 곳곳 이슈의 현장을 찾아간다. 젊은 기자들은 갈등의 현장에서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듣고,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고민을 나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