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범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31일 취임식에서 “‘중죄필벌, 경죄관용’의 정신을 되새겨 달라”고 검찰 구성원에게 당부했다. 무거운 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하지만 가벼운 죄에는 관용을 베풀자는 말이다. 그는 “중소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대내외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이 경제 상황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다만 검찰 구성원들은 이 같은 말이 ‘기업 봐주기’라기보다 대형 경제권력의 부패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이라고 이해했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부장검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공정경쟁 질서’를 통한 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조하던 대목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경제적 상하관계에서 ‘을’에 처한 이들을 어렵게 하는 ‘갑’의 반칙행위를 바로잡자는 독려였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언급한 것은 그 원인에 불합리한 반칙이 있는지 살피자는 뜻”이라며 “특정업체 밀어주기 등 ‘갑질’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크다”고 말했다. 배 지검장의 취임사에도 “안전을 위협하고 민생을 해하는 범죄에 눈 감지 않는 검찰이 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배 지검장은 이날 오전 9시쯤 폭우를 뚫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첫 출근을 했다. 취재진이 “굵직한 사건들이 많은데 어떻게 지휘할 계획이냐”고 묻자 그는 “차츰 현안을 살펴보려 한다”고 답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한 공소유지도 과제다.
법조계와 재계는 배 지검장이 선택할 첫 수사 타깃을 궁금해한다. 윤 총장이 “검찰의 직접수사가 여전히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만큼 하반기에 대규모 수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검찰에 고발한 기업도 다수다. 한 부장검사는 “첫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스스로 고르기보다는, ‘윗선’과의 협의에 따라 선정한 아이템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허경구 박상은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