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줄 알았으면 잡아달라 안 했을 텐데…” 범인 용서한 피해자

입력 2019-07-31 13:56 수정 2019-07-31 18:01
그림 = 김희서 인턴기자

“이 아이인 줄 알았으면 잡아달라고 하지 말 걸 그랬네요 형사님….”

광주의 한 게임장에서 현금 1000만원을 훔친 절도범이 30일 근처 허름한 주택에서 붙잡혔다. 경찰서로 달려온 피해 업주는 범인 A씨(27)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난달 게임장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더니 연신 “착한 놈인데 어쩌다가…”를 되뇌었다.

A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고 친부마저 외국으로 떠나면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광주 북구 외곽의 허름한 주택에 세 들어 살던 중 지난해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A씨의 ‘하루살이’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범행을 벌인 게임장을 포함한 이곳저곳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삶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일하던 업체가 갑자기 폐업했고 A씨는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구직 기간은 길어졌고 급한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상품권을 사들여 되파는 일까지 했다. 그렇게 번 푼돈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위기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30여만원이라는 큰 금액의 스마트폰 요금이 청구된 것이다. 이를 당장 구할 수 없던 A씨는 고민 끝에 게임장의 담을 넘기로 했다.

결국 A씨는 지난 20일 오전 3시40분쯤 게임장 내부에 침입했다. 서랍에 있던 열쇠로 금고를 열고 현금 1000만원을 빼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추적에 나선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범행 10일 만이었다.

게임장 업주 B씨(61)는 도둑맞은 1000만원 중 770만원을 돌려받았다. 그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며 “이 돈이라도 되찾았으니 불쌍한 아이를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부탁했다.

이어 A씨에게는 “네가 교도소를 갈지 선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벌을 받고 나오면 다시 나를 찾아오라”며 “밀린 스마트폰 요금은 내가 내줄 테니 다시 새 출발 하라”고 다독였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었으나 초범에 도주 우려가 없고 피해자의 선처 요청을 참고해 그를 석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절도죄는 불구속 상태에서라도 처벌받게 돼 있다. 경찰은 A씨가 처벌받은 이후에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취업 교육 등 지원책을 찾아줄 예정이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