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 넓힌 특수, 저무는 공안

입력 2019-07-30 16:26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최현규 기자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승진을 놓고 공안·특수 차장검사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올해엔 사법연수원 27기가 처음으로 검사장에 승진했는데, 그 2명은 삼성그룹 등 굵직한 기업수사로 이름을 날린 특수통이었다. 반면 이들의 선배인 25기 중 ‘공안통’으로 꼽히던 검찰 간부들은 2년 연속 승진에 실패했다. 김광수 부산지검 차장, 최태원 서울고검 송무부장, 김병현 서울고검 검사가 이후 사의를 표했다.

한때 검찰 안팎에서는 “출세하려면 공안통이 돼라”는 말이 있었다. 대공·시국사건 처리가 검찰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꼽히던 권위주의정부 시절부터 공안은 한동안 ‘엘리트 검사’ 양성 코스로 받아들여져 왔다. 안대희 전 대법관, 주선회 박한철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진출하는 검찰 인사들은 대개 공안”이라는 인상을 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공안의 전성기는 김대중·노무현정부 들어 꺾이기 시작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006년 2월 인사에서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박철준 당시 부천지청장이 검사장 승진에 탈락하며 지금과 같은 충격을 줬다. 이 인사는 이후 젊은 평검사들이 ‘주특기’를 고민할 때 영향을 미쳤다. 검사장으로 퇴직한 한 법조인은 30일 “서울중앙지검 총무부가 평검사들에게 인사 희망 부서를 조사했을 때, 공안 부서를 1지망으로 쓴 검사가 1명도 없던 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공안 검사들은 2016년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이어진 검찰의 여러 ‘적폐 수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조금씩 잃어 갔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검찰 고위직 인사가 대표적이다. ‘기획통’ 권익환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임명됐고, ‘공안통’ 이상호 당시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대전지검장이 됐다. 이때 법조계에서는 “둘의 인사가 바뀐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특수통이 이때부터 전통적인 공안통의 자리에서 중용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엔 특별수사 경력이 많은 박찬호 당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장이 2차장에 올랐고, 그는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공안부장을 맡았다. 박 검사장이 있던 2차장 자리의 후임자로 현재 거론되는 이들도 공안 수사 경험이 많다기보다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검찰은 설문조사를 거쳐 ‘공안’이라는 이름도 버리기로 한 상태다.

부정부패 척결이든 국가체제 수호든, 큰 틀에서는 결국 같은 검찰의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공안통으로 분류됐던 한 전직 검사장은 “특수에는 특수의 영역이 있고, 공안에는 공안의 영역이 있어 양대산맥을 형성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 개개인이 20년가량 축적한 공안 수사의 역량이 사라지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며 “특수통들도 나름대로 각자의 전문성을 쌓으며 헌신했는데, 공안과 기획 등 경력과 무관한 분야에 보내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구승은 허경구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