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스스로 반납하려는 포항제철고…속사정 들여다보니

입력 2019-07-30 01:01
경북 포항제철고등학교 전경.

전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이 교육 당국의 자사고 폐지 방침에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전국 단위 유명 자사고가 스스로 일반고 전환을 검토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학교측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자사고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학부모는 물론 시 당국과 시의회 등 지역사회까지 나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9일 포스코교육재단 등에 따르면 이 재단은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고등학교가 ‘일반고로의 전환, 운동부(야구부) 폐지 및 조정, 교사 등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포스코에 전달했다.

포스코의 출연금이 갈수록 줄어 재정 자립이 불가능한 만큼 학교 운영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2012년 385억원에 이르던 교육재단 출연금은 매년 줄어 지난해에는 234억원에 그쳤다.

이 가운데 포항제철고를 비롯해 광양제철고 인천포스코고 등 자사고 3곳에 지원된 금액은 100억원 정도였다.

포스코는 매년 이사회를 열어 포스코 자체의 경영악화를 이유로 지원금을 줄여왔다.

1981년 개교한 포항제철고는 전국 단위 자사고로 2010년 지정됐으며 최근 경북교육청의 심사를 통과해 자사고로 재지정됐다.

재단측은 재정 부족을 표면적 이유로 꼽고 있지만 일각에선 “포스코 경영진이 정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포스코측이 문재인정부가 추진해온 자사고 폐지 정책에 부응하면서 다른 실리를 챙기겠다는 속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앞으로 교육재단 출연금을 더 줄이고 그 만큼의 재정을 고용창출과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에 쓰는 게 맞다는 게 경영진 생각”이라고 말했다.

포항제철고의 일반고 전환 움직임은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광양제철고와 인천포스코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 운영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이 알려지자 지역사회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는 지난 26일 공동입장문을 발표하고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시와 시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포스코가 인재 양성을 통해 기업과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창업이념을 버리고 경제논리만 앞세워 전국이 부러워하는 교육특구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포항제철고의 일반고 전환은 포항 인재를 다른 지역으로 유출할 뿐”이라며 “시민과 학생, 학부모를 기만하는 처사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소속 박명재 의원(포항남·울릉)도 “재단이 제출한 보고서를 백지화하고 재단 출연금을 정상화하라”며 “포항 시민은 비상식적, 비교육적 일탈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는 “(포항제철고의 일반고 전환) 안은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학부모 등 이해당사자들 협의도 거쳐야 할 사안”이라며 “아직 검토하는 단계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포스코교육재단은 지난해 10월에도 포항 광양 인천에서 운영하는 유치원과 초·중·고 12곳 중 고등학교 4곳을 제외한 8곳을 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학부모 반대로 철회한 바 있다.

포스코 측은 “이번 안은 교육재단의 재정자립화 방안 중 하나일 뿐이며 이에 대한 포스코 입장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