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것을 ‘국고손실’ 혐의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핵심 쟁점은 국고손실 혐의의 주체가 되는 ‘회계관계직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하급심에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푸는지에 따라 공소사실 중 국고손실 혐의가 포함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미칠 파장도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 25일 국정원장들과 공모해 특활비 35억원을 상납받은 혐의(특가법상 국고손실 등)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게 1심보다 1년 감형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국정원장을 국고손실 범행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국고손실 대신 특경가법상 횡령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국고손실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상 국가 회계사무를 집행하는 자(회계관계직원)가 국고에 손실을 입힌 사실이 있어야 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법률상 ‘기타 국가의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판단해 박 전 대통령에게도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은 이 같은 논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회계관계직원의 범위를 좁게 해석해 정반대 결론을 내놨다. 2심은 “회계관계업무를 소속 공무원에게 위임하고 있을 경우 중앙관서의 장은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을 ‘회계책임관’으로 두고 회계업무를 위임했던 만큼 국정원장이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 전 국정원장 등 3명의 공판을 진행한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도 지난해 12월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반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지난해 10월 “국정원장은 실질적인 회계관계업무를 처리한다”며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회계사무를 주요 업무로 하진 않더라도 최종 감독·승인 업무를 하는 사람도 포함된다”며 넓게 해석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 역시 지난 1월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동일하게 판단했다.
하급심 판결이 충돌하면서 결론은 대법원 소관이 됐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최종 해석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국고손실 혐의 판단에서도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박병대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당시 기조실장) 등과 공모해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예산 3억5000만원을 편성한 뒤 이를 애초 목적과 달리 각급 법원장 격려금으로 지급한 혐의(국고손실)를 받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과 유사한 구조다.
검찰은 공소장의 국고손실 부분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법원 예산 총괄·감독 임무가 있다’고 했고, 임 전 차장에 대해선 ‘사법부 예산·회계 사무를 관장하는 회계책임관’이라고 적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30일 “두 사건은 구조상 상당히 비슷하다”며 “대법원이 회계관계직원 범위를 넓게 해석할 경우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국고손실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