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험문제 완벽 분석돼 있습니다. 선생님들 출제 패턴까지 정리돼 있습니다.”(○○고교 내신 전문학원 관계자)
“△△외고는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는 수학 성적이 가릅니다. 일반 학교와 출제 문제가 다릅니다. 저희는 분석이 끝났습니다.”(△△외고 내신 전문학원 관계자)
사교육이 특정 고교의 내신 성적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이 커지자 중·소규모 학원들이 특정 학교의 ‘내신 전문’이란 타이틀로 학생·학부모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여 있어 내신 성적을 올리기 어려운 자율형사립고(자사고)나 외국어고, 국제고 혹은 입시 명문 일반고 등이 주된 타깃이다. 고교 1학년 1학기 내신 성적을 망친 학생에게는 “여름방학을 활용해 2학기 중간고사를 노려라”고 현혹하고 있다. 공교육은 속수무책이다. 교육부는 알고도 입을 다물고 있다.
수도권 △△외고의 수학 내신을 전문으로 한다는 A학원은 여름방학을 맞아 2학기 정기고사 대비 특강 상품을 개시했다. 수강료는 월 60만원으로 매주 2회 수업을 받는다. 주로 △△외고 학생들이 다니고 있으며 5~6명을 묶어 가르친다. 이 학원 관계자는 24일 “△△외고 시험문제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분석돼 있다. 학교에서 나오는 교재와 (학원) 자체적으로 만든 문제로 준비해준다”고 말했다.
충청도 입시 명문으로 알려진 ○○고교 인근에 위치한 B학원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국어와 수학 내신과 논술을 전문으로 가르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들의 성향과 출제 패턴까지 꿰고 있다고 자랑한다.
입시 업계에선 자사고 외고 국제고뿐 아니라 웬만한 진학 실적을 보이는 일반고들도 이들 학교의 정기고사를 전문적으로 대비해주는 학원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학령인구 감소 탓에 중·소규모 학원들이 한때 위기에 몰렸지만 내신 사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교육 당국은 지난 10년 동안 고교 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대입에서 학생부 비중을 높여 왔다. 내신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공교육의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이 확장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준 셈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30일 “수시 비중이 80%로 치솟으며 학교 정기고사의 대입 비중이 매우 커졌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은 한번 잘못 보면 만회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고3 1학기까지 10번의 수능을 치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국 고교 2000여곳에서 매 학기 두 차례 2000종의 수능이 치러지는 상황이므로 내신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 성황을 이룰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흐름은 교육부 사교육비 통계에서도 일부 엿볼 수 있다. 1인당 사교육비는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사교육을 받는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수업 보충·심화’ 즉 내신 성적 대비용이란 응답이 48.8%였다. 2017년에 비해 4.7% 포인트 상승했으며 다른 요소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올해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도 학교수업 보충·심화 응답이 49%였다.
학부모·학생은 내신 경쟁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재수생과 고교생을 뒷바라지하는 윤모(52)씨는 “교사들은 경쟁도 평가도 거의 없다. 경쟁이 없으니 수업의 질은 떨어지는데 정기고사는 변별력 있게 낼 수밖에 없다”며 “이러니 학교와 교사의 정기고사 출제 패턴을 분석했다는 전문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라면 법에 따라 규제할 수 있지만 이런 식(내신 전문 학원)이라면 공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말고 막을 방법은 없을 거 같다”고 말했다. 한 입시 전문가는 “복잡한 대입 제도와 수시 전형의 정보 부족으로 먹고사는 입시컨설팅 시장, ‘불수능’과 ‘킬러문항’ 대비를 축으로 다시 뜨는 수능 사교육 시장, 내신 성적 혹은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는 전문 사교육 등으로 사교육이 전문화 세분되고 있다. 어느 한군데 잘못 손대면 다른 사교육이 늘어나므로 교육부로서도 현재로선 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