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화이트리스트’ 韓 배제 임박… “방콕 외교장관 회담서 돌파구 찾아야”

입력 2019-07-29 17:23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가 다음달 2일 최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일본이 예고한 대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한국 배제를 강행할 경우, 양국 관계는 당분간 회복하기 힘든 국면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을 막아 확전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동안 꽉 막혀있던 한·일 간 외교채널은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다음달 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 4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 주요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이후 한·일 외교수장이 처음으로 대면할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외교부에서 일본을 담당하는 김정한 아시아태평양국장도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회동,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해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외교적 협의를 통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다. 한·일 갈등의 확전을 막고, 외교적 해법 마련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29일 “정부는 지난달 19일 한국이 제안한 ‘한·일 기업기금 출연안(1+1안)’을 토대로 일본과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일본이 협상장에 나오면 한·일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스탠스다.

다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를 철회하려면 우리 정부가 지난달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한 ‘1+1안’을 넘어서는 대안이 필요하다. 일본이 이미 제외 조치를 공언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를 물릴만한 명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마련하지는 않더라도 정부가 기금 마련을 주도하거나 아직 대법원 배상 판결을 받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1차관은 “한국 정부의 역할이 빠진다면 일본이 우리가 제시한 어떤 대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끝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각의에서 통과시킨다면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영향을 받는 전략물자가 1100여개 품목이나 되기 때문에 한·일 무역전쟁은 사실상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또 정부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강행할 경우, 즉각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의 조치를 제소할 방침이다. 일본 역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계획이라 전선은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 ICJ 제소에는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고, 한국은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ICJ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빌미로 추가적인 경제보복을 단행하거나 독도 영유권 문제를 ICJ에 제소하는 등 갈등 상황을 확대할 수도 있다.

한·일 관계를 잘 아는 한 외교소식통은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에 대한 일본 내 지지 여론이 높은 데다, 이를 유보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소식도 일본에서 들려오지 않고 있다”며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의 회담을 통해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