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반(反) 푸틴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수감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이상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직후 발생한 일이라 정부 측 화학물질 테러로 인한 신체 손상이 의심되고 있다.
나발니 측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알렉세이 나발니가 오전 9시30분쯤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며 “얼굴이 부풀어오르고 피부가 붉게 변했다”고 밝혔다. 그의 주치의인 아나스타샤 바실리에바는 페이스북에 “알레르기 반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발니는 평생 알레르기로 인한 피해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제3자가 의도적으로 화학 물질을 뿌려 피부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나발니 측근 레오니드 볼코프는 나발니가 지난달 수감 시설에 구금됐을 때부터 피부 증상이 있었던 점을 거론하며 수감 시설의 열악한 위생 상태를 신체 이상의 원인으로 제기했다. 나발니의 증세는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병원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정선거를 요구하는 주말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나발니는 이번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지난 24일 체포돼 30일 간의 구류 처분을 받아 수감 중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항마’로 꼽히는 야권 인사로 러시아 정부 당국에서는 반정부 인사로 분류된다.
영 가디언은 나발니가 지난 2017년에도 크렘린궁 인근에서 친정부 세력에 의해 녹색 염료 테러를 당해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버릴 뻔 했던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당국이나 친정부 단체가 과거부터 야권 인사 및 해외 망명자들의 의문사 및 독살의 배후로 지목된 적이 다수 있었던 사실을 지적하며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 2015년 야권 인사 보리스 넴초프가 의문을 총격을 받아 숨졌고, 지난해 3월 영국에서는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가 러시아군이 개발한 화학물질에 노출돼 치료를 받은 바 있다.
러시아 경찰이 지난 주말 수도 모스크바에서 1400명에 가까운 공정선거 촉구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한 것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다. 이번 시위는 모스크바 선거당국이 오는 9월 8일 시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력 야권인사들의 후보 등록을 거부하며 촉발됐다. 지난 20일 2만2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스크바에 모여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전날에도 약 3500명의 시위대가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와 시청 청사 주변에서 공정선거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모스크바시 당국 등이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1373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됐고 이중 150명은 여전히 구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