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산맥에 둘러싸인 레만호의 상공에서 태극기가 휘날렸다. 우승자의 국기를 펼치는 스카이다이빙은 미국(LPGA)·유럽(LET) 여자프로골프 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시상식만의 이색적인 이벤트다. 스카이다이버는 시상식장의 낙하지점으로 정확하게 착지해 챔피언의 어깨에 태극기를 둘렀다. 갤러리의 박수와 함께 애국가가 연주되자 챔피언은 꾹꾹 눌렀던 울음을 터뜨렸다. 고진영(24)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생애 두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고진영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6527야드)에서 끝난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1개를 묶어 4언더파 67타를 적어냈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69타. 우승 상금은 61만5000달러(약 7억2000만원)다. 고진영은 올 시즌 투어에서 가장 먼저 3승 고지를 밟은 선수가 됐다. 그중 2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수확했다. 고진영은 앞서 지난 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정상을 밟았다. 고진영은 박성현에게 한 달간 내줬던 세계 랭킹 1위도 탈환했다.
하루 종일 비를 쏟은 악천후에서 경기는 두 시간이나 지연됐다.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김효주, 2위였던 박성현이 무너져 오버파를 기록할 만큼 날씨의 변수는 강력했다. 이 틈에 고진영은 보기를 1개로 줄이고, 페어웨이를 놓친 티샷을 1개만 범할 정도로 안정적인 라운딩을 펼쳤다. 김효주와 4타 차 공동 3위에서 출발했지만 마지막 18번 홀을 끝냈을 땐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고진영은 17번 홀에서 버디 퍼트에 성공한 뒤 승리를 확신한 듯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고진영은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쏟았지만, 굵은 빗줄기를 뚫었던 필드 위에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깊은 신앙심으로 이름난 고진영은 이날 경기가 지연된 두 시간 동안에도 성경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 연결된 팬 2만명에게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쓴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 그는 “두 시간이 지연돼 설교 말씀을 들었다. 그 시간이 참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김효주는 이날 2타를 잃어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공동 2위로 밀렸다. 박성현은 공동 6위(10언더파), 박인비는 공동 8위(9언더파)로 완주했다. 한국 선수는 올 시즌 21개 대회에서 10승, 4개 메이저대회에서 3승을 합작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