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진과 조국’ 8년 전 데자뷔, “코드 인사” 반발했던 민주당

입력 2019-07-29 05:00 수정 2019-07-29 05:00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정치권에서 8년 전 ‘민정수석 데자뷔’가 떠오르고 있다. 조 전 수석이 ‘민정수석→법무부 장관 직행’ 코스의 2번째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최초는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힌 사례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이를 ‘코드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8년이 지난 2019년, 여야 간 공수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한나라당)은 야당(자유한국당)이 됐고, 야당(민주당)은 여당(민주당)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으로, 권 전 수석이 조 전 수석으로 사람만 바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똑같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치를 사정 라인에 대통령의 최측근을 앉히겠다는 것은 선거 중립을 내팽개치고 여당에 유리하게 판을 짜겠다는 불순한 의도”라며 여당인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등이 이명박 정부의 ‘코드 인사’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김 원내대표는 “대통령 부인과 누님, 동생 하는 측근의 법무부 장관 임명은 정권 말 권력형 비리를 현 정권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제대로 된 나라 가운데 자신의 측근, 비서를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는 사례가 있느냐”며 “군사정권 때도 국민의 눈이 무서워서 못하던 인사”라고 반발했다.

2011년 당시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의 모습. 연합뉴스

당시 ‘권재진-한상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라인과 ‘조국-윤석열’ 체제가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국정 운영 지지도가 추락하자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란 칼을 빼 듦과 동시에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을 곧바로 검찰총장에 지명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검찰을 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한 총장 임명은 검찰 역사상 유례없는 직행 인사였기 때문이다.

만약 조 전 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 ‘조국-윤석열’ 체제가 시작된다. 윤 총장의 경우 2017년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초임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어 2년 만에 검찰총장에 발탁되면서 한 총장과 마찬가지로 새 역사를 쓴 바 있다.

이미 야권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기정사실로 하며 조 전 수석을 견제하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신독재 밑그림을 그린 조국 수석이 이끌게 될 법무부는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무차별 공포정치’의 발주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같은 날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민주당, 정녕 이익집단이 되고자 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진이라 불리는 의원들마저 민정수석의 장관행을 옹호하고 있다”며 “청와대의 행동에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특히 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의 당시 발언까지 끄집어내 공세를 펼치고 있다. 당시 원내수석부대표였던 노 실장은 긴급의원총회에서 “청와대가 오늘 오후 권재진 민정수석과 한상대 서울지검장을 장관과 총장 임명을 강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 같다”며 “국민과 정치권의 우려에 대해 청와대가 특유의 오기를 부리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을 이명박 정권이 또 하나의 신기록을 세우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발언을 인용 소개하며 “조 전 수석은 이를 잘 새겨보시고 결정하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반면 여권에서는 권 전 수석과 조 전 수석의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권 전 장관은 검사 출신에, 민정수석 때도 검찰을 사실상 장악해서 좌지우지했던 분”이라며 “그러나 조 전 수석은 기본적으로 검찰 출신도 아니고 공수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사법 개혁을 주장했던 분이라 검찰과 상당히 긴장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문 대통령도 과거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 같은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만 보장된다면 대통령 참모가 법무부 장관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능력의 문제’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생각은 당시의 민주당 논평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06년 참여정부 시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물러나 있던 ‘문재인 법무부 장관 카드’를 놓고 고심했으나 야당의 반대는 물론 당·청 간 갈등이 커지는 바람에 그 뜻을 접은 바 있다.

여권에서는 당시 임기 말, 국정 운영 지지도 추락으로 총선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컸던 한나라당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임기 3년이 남은 상황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는 만큼 이번 인사가 총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식으로 선 긋기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앉힌다면, 검찰 장악이 아니라 ‘조국-윤석열’ 체제를 통해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필두로 한 ‘사법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