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적이면서 ‘탈북자’라 속여 지원금 수령한 북한이탈주민 1·2심 ‘무죄’

입력 2019-07-28 17:33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 국적으로 취득했음에도 탈북자라 속여 정착지원금을 수령한 혐의로 기소된 북한이탈주민에게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탈북자 중 상당수가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하는 현실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부(홍진표 부장판사)는 북한이탈주민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북한이탈주민 A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어떤 국가로부터 (해당) 국적자처럼 사실상 대우받았다는 사정이 곧바로 법률상 국적의 취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검사는 A씨가 탈북 후 중국 국적법에 따른 국적회복절차를 거쳐 중국 국적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A씨가 법률상 중국 국적을 상실했음에도 (중국의) 공안기관이 이를 알지 못한 채 호구부 등을 근거로 A씨를 사실상 중국 국적자로 대우했을 개연성이 상당한 반면, A씨가 중국 국적을 회복한 중국 국적자라는 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뒤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도 2008년 한국에 입국해 탈북자라고 자수했다. 이후 총 480만원의 정착지원금을 부당하게 지급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1960년 중국에서 태어나 1975년 북한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2001년 중국으로 탈출해 중국 국적을 회복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중국 국적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1심은 “A씨가 중국 국적자라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2심도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관계자는 “탈북자 중 상당수가 3국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하는 현실에서 탈북자가 브로커 또는 기타 방법을 통해 3국의 신분증명서류를 발급받았다는 사정만으로 탈북자의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보호·지원 신청을 부정한 신청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탈주민법은 북한이탈주민이 아님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정착지원금을 받은 경우에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또 탈북한 뒤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검찰은 A씨가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법원은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보지 않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한편 A씨를 변호한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A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던 중 2010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몰래 중국에 입국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한국 외교 당국은 A씨가 중국 국적자라는 중국 측 자료를 믿고 A씨에 대한 외교적 보호를 중단했다.

결국 중국에서 귀국하지 못한 A씨는 중국을 떠돌다 2012년 가족들을 탈북시키는 데 성공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재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부는 A씨가 중국 국적자임을 들어 가족들의 입국만 허가하고 A씨는 중국으로 추방했다.

A씨는 가족들이 입국한지 3년이 지난 2015년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검찰은 A씨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를 적용해 2016년 7월 그를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찬희 대한변협회장은 “이번 판결은 탈북 이후 18년간 북한과 중국을 떠돌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A씨의 삶을 보호함과 더불어 대한민국이 탈북자를 국민으로서 보호해야 할 의무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