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A씨(61)를 10여년간 서울 잠실야구장 적환장(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 살게 하며 급여와 장애수당 등을 가로챈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의 가해자 친형 B씨(74)가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됐다. 검찰이 “피해액보다 많은 돈을 상환했고 지속적으로 동생을 살펴왔다”며 그를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검찰은 유일한 보호자를 처벌할 경우 가족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애인 학대라는 사건의 본질에 비춰봤을 때 아쉬운 처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A씨를 긴급 구조한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발견 당시 A씨는 돈이 없어 썩은 빵을 먹던 상황”이라며 “60세가 넘은 그에게 친형이 도대체 언제 노후자금을 주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A씨는 지난 26일 국민일보를 만나 “형이 나쁘다. 밥을 안 줬다”는 말을 반복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문성인)는 ‘현대판 잠실야구장 노예’로 알려진 A씨의 친형 B씨를 지난 4월 26일 불기소 처분했다. B씨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A씨에게 지급된 급여와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수당 등 8300만원을 따로 보관하거나 유용한 혐의(횡령, 장애인복지법 위반)를 받았다. 사건은 경찰의 기소 의견과 함께 지난해 7월 검찰에 송치됐다. B씨는 A씨의 돈 중 2000만원은 현금으로, 1000만원은 아내 명의의 정기예탁금으로 보관했다. 4000만원은 자신의 빌라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으로 내줬다.
검찰은 B씨의 일부 횡령이 인정된다면서도 “고령에 초범이고, 수사 개시 전까지 지속적으로 A씨를 보살펴온 것으로 보인다”며 기소유예 처분했다. B씨가 A씨의 기초수급자 급여, 장애수당 181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한 장애인복지법위반 혐의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무혐의로 판단했다. 검찰은 B씨가 수사 개시 이후 A씨 명의의 통장에 피해액보다 큰 7000만원을 입금한 점, B씨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A씨를 지속적으로 보호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조사 과정에서 “통장에 돈이 많이 있으면 기초수급자 자격이 박탈된다고 해 현금으로 인출했고, 내가 죽고 나면 보살필 사람이 없어지는 동생의 노후 보장을 위해 모아둔 것일 뿐 개인적으로 사용한 건 아니다”고 진술했다. 또 “동생이 잠실야구장 적환장으로 옮긴 이후에도 아내와 함께 찾아가 옷이나 신발, 밥과 반찬을 사주며 보살폈다”고 말했다. 검찰도 “자신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피해자 보호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보살펴 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런 B씨가 A씨의 피해금액을 관리한 사정만으로 불법영득의사(다른 사람의 재물을 개인적 용도로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인정하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B씨가 현금으로 보관하던 2000만원, 아내 명의로 정기예탁금에 가입한 1000만원 등 3000만원은 A씨의 노후자금을 위해 보관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찰은 B씨가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며 임의로 쓴 4000만원 부분은 미필적 횡령에 해당하지만, 수사 이후 더 큰 돈인 7000만원을 상환한 점도 고려했다. 검찰은 B씨가 A씨의 급여통장을 관리했지만 개인적으로 빼내 쓴 흔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인권변호사들은 검찰의 처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4000만원을 전세보증금 반환 시 사용해버린 B씨의 행동을 볼 때, ‘3000만원을 A씨의 노후자금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소아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변호사는 “B씨의 7000만원 변제는 양형에 반영될 사유일 뿐 기소유예의 근거로 적절치 않다”며 “장애인 학대 사건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에 비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사무능력자처럼 취급된 데 대해서도 인권변호사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A씨가 고소장과 진술조서를 통해 처벌 의사를 밝혔음에도 검찰이 A씨의 의사소통 능력을 의문시하는 심리평가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A씨의 진정한 처벌 의사를 궁금해했다면 서류가 아닌 대면을 통해 노력했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B씨가 경찰 조사 이후 수소문 끝에 A씨의 주거지를 확인해 잘 살고 있는지 들여다본 것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하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는 “B씨가 수소문까지 해 A씨를 찾아갈 경우 A씨가 B씨를 보고 안심했을지, 2차 피해를 입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A씨는 B씨의 불기소 사실을 처분 3개월 만인 지난 24일 직접 검찰청을 방문해 결정문을 발급받고서야 알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인지사건(수사기관이 직접 범죄혐의를 포착해 진행한 사건)으로 분류돼 있었다”며 결정문 송달이 필요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기소 결정문에도 “이 사건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라며 A씨의 B씨 고소 사실이 적시돼 있다. 최 변호사는 “검사가 불기소 처분 7일 내에 서면으로 고소인 등에게 취지를 통지해야 하는 형사소송법을 고려하면,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은 일은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했다.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은 지난해 3월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가 A씨를 서울 잠실야구장 적환장 옆 컨테이너에서 긴급 구조한 사연을 국민일보가 보도(국민일보 2018년 3월 12일 1·12면 보도)하며 알려졌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앞서 B씨와 함께 고물상 운영자 C씨(55)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C씨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A씨는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내 돈을 써도 된다고 한 적도 없고, 빌려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형은 밥을 사준 적이 없다. ‘힘들어 일을 안 하겠다’고 말했더니, 형은 ‘오래오래 일하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