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과 한국의 신형군사장비 도입 등에 대한 반발로 전날 신형전술유도무기의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지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제재 완화 등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를 놓고 미국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한국 때리기’를 통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지역에 첨단공격형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남조선 군부호전 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신형전술유도무기사격을 조직하시고 직접 지도하셨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날 오전 5시34분과 5시57분쯤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 5월 9일 이후 77일 만인데, 이번 발사가 CPX와 한국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러시아 이스칸데르’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새로운 형태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이라고 이날 설명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남조선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겉으로는 한국을 비난하지만 속으로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미 비난을 자제, ‘대화의 판’을 유지하면서도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도 한국이 CPX를 중단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 전 미국과 벌이고 있는 물밑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위원은 또 “한국을 압박해 미국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북·미 간 물밑협상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만만한 한국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미 간 실무협상이 오는 8월에도 재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잠수함을 공개와 전날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가 실무협상 재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아울러 북한이 최근 다음 달 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불참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지며 기대되던 리용호 외무상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도 무산됐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