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뒷이야기를 다룬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역사적 근거가 빈약한 가설을 사실인양 묘사했다는 비판과 영화적 창작 범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승려 신미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한글을 만들었다는 가설을 토대로 한다. 문제는 단순한 조력자 수준을 넘어서 한글 창제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 신미인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논란을 의식한 듯 영화사 측은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자막을 오프닝에 넣었다. 조철현 감독은 간담회에서 “저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이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나 판단 앞에서는 겸허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관점에서 넣었다”고 말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세종 친제설’이 역사학계의 정설이었던 터라 ‘나랏말싸미’의 해석은 창작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내용은 허구에 가깝다는 게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역사적 사실을 뒤틀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이나 외국인들이 영화를 접했을 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게 제기된다.
일부 관객들은 항의의 뜻으로 포털사이트 ‘평점 테러’에 나서거나 아예 이 영화를 보이콧하자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싸늘해진 민심은 흥행 성적에 곧바로 반영됐다. 개봉일인 지난 24일 ‘라이온 킹’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영화는 단 하루 만에 2위로 내려앉았다.
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 같은 해석을 영화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역사강사 심용환씨는 “역사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숱한 역사 드라마들을 봐도 오류가 없는 작품이 없다”면서 “대중적 통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창작자를 공격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