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이스터고? 이 업체가 최고” 지원서 맡긴 고교, 소개한 직능원

입력 2019-07-29 05:00 수정 2019-07-29 05:00
그림= 전진이 기자

교육부로부터 특성화고 행정지원 등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이 마이스터고 전환과정에서 권한을 넘는 부적절한 개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직능원은 교육부의 지시로 해당 사안에 대한 자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에 “직능원이 마이스터고 전환을 원하는 세종 관내 모 고교에 대해 컨설팅 업체를 소개해주는 등 부적절한 개입을 한 정황을 발견했다”며 “지난 5월 17일 교육부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직능원이 마이스터고 지정을 계획하는 학교에 공모계획서 작성을 돕는 특정 업체를 소개해줬고, 심사 과정에서 이 업체가 담당한 학교에는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 업체를 거친 학교 대다수는 수준미달인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마이스터고로 지정됐다”며 “이 업체의 계획서 작성 가격은 업계 평균인 건당 500만원의 6배 정도인 3000만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고에서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 매년 교육과정 운영비가 나오는 등 혜택이 많다.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세종 소재의 일반고인 A고등학교는 마이스터고 전환을 추진하던 중 지난해 마이스터고 지정을 받은 강원 지역 B고등학교 측과 접촉해 준비전략에 대해 문의했다. 마이스터고 전환 신청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정은 공모계획서작성이다. A고등학교 담당자가 “B고교로부터 직능원이 소개한 업체에 맡기면 어려움 없이 마이스터고로 지정될 수 있다. 우리 학교도 그렇게 해서 통과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는 게 교육청 측의 전언이다. 이 조언에 따라 A고등학교는 지난 4월 초부터 중순까지 직능원을 통해 공모계획서를 작성해줄 특정 업체를 소개받은 뒤 이 업체에 계획서 작성을 의뢰했다.

규정상 공모계획서를 외부업체와 협력해 작성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계획서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절차나 방식이 까다로워 많은 학교들이 외부 업체와 협력한다. 다만 직능원이 업체를 직접 소개해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세종시교육청은 주장했다.

지난 5월초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세종시교육청은 타 시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들로부터 관련 내용을 수집하는 등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같은 달 17일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에서 개최된 시도교육청 직업교육담당과장 회의에서 교육부 측에 직능원에 대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직능원이 업체를 소개해주는 행태 자체가 이상하다”며 “직능원의 컨설팅 방법은 명백하게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입수한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학교 중 특정 업체를 거친 보고서와 그렇지 않은 보고서를 비교해보니 차이가 분명했다. 2010년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충북지역의 한 학교가 낸 보고서를 보면 공모계획, 기숙사 확보계획, 교원수급계획, 교원·학생 지원 계획 등을 꼼꼼하게 작성해 각각의 문서에 학교장은 물론 교육감 결재까지 받아 첨부돼있었다. 동아리 운영계획까지 적었다.

반면 문제의 업체를 거친 B고등학교의 경우 기본적인 항목만 채워진 수준이었다. 또 마이스터고 지정에 필수적인 업무협약 산업체 항목에서는 대상 업체를 선정해 명시하는 대신 그 분야 업체명을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돼있었다. 학생들이 입학 후 교육을 받게 될 핵심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은 셈이다. 학교가 공모계획서를 충실히 작성하지 않으면 마이스터고로 지정되더라도 학교 측이 향후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청 측의 판단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된다.

이에 대해 직능원 관계자는 “문서만 보면 허술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하지만 면대면 회의를 여러 차례 거쳤고 이 과정에서 마이스터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제의 업체를 거친 학교 명단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이들 중 대다수는 마이스터고로 전환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과정에 비리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교육부는 세종시교육청으로부터 지난 5월 17일 이 사실을 보고받은 뒤 24일 직능원에 자체 감사를 지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A고등학교가 직능원을 통해 특정 업체를 소개받은 건 맞지만 해당 고교에서 먼저 업체 소개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 컨설팅 과정에서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는 학교들이 있다”며 “직능원 자체감사 결과가 나오면 추후 해당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