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임 총리로 선출된 보리스 존슨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완수를 선포하며 정치적 혈투를 예고했다. 그는 새 내각에 브렉시트 강경파들을 대거 포진시키며 본격적으로 ‘하드 브렉시트’(EU와 완전한 결별) 준비에 착수했다.
파이낸셜타임스, BBC 등 영국 언론은 24일(현지시간) 존슨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총리관저 앞에서 열린 첫 대국민 성명에서 “만약도, 예외도 없다(no ifs or buts)”며 “영국은 99일 이내 EU를 탈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EU와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영국이 오는 10월 31일까지 무조건 EU를 탈퇴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완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을 향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지난 3년간의 망설임과 근거없는 비관론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브렉시트로 인한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EU와의) 새로운 합의, 더 나은 합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아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게 되는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존슨 총리는 연설이 끝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브렉시트 강경파들을 새 내각의 주요 각료로 배치하는 대대적 인사를 강행했다. 전임 테레사 메이 내각 구성원 중 무려 17명이 교체됐다. 미국 CNN은 존슨 총리가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을 가장 먼저 내각에서 내보내며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강경파인 나이절 에번스 보수당 의원은 이번 내각 구성을 “여름날의 대학살”이라고 평했다.
내각의 2인자인 재무장관에는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이 기용됐다. 파키스탄 이민가정 출신인 자비드 장관은 당초 존슨 총리와 보수당 경선에서 맞붙었으나 탈락한 뒤 존슨 총리 지지를 선언했다. 후임 내무장관에는 인도계인 프리티 파텔 전 국제개발부 장관이 임명됐다. 파텔 장관은 경선 때부터 존슨 총리를 열렬히 도우며 “오직 그만이 브렉시트와 보수당을 구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장관에는 도미닉 라브 전 브렉시트부 장관이 발탁됐다. 라브 장관은 메이 내각에서 브렉시트 협상을 책임지다가 “메이 총리의 계획을 양심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며 사임한 전력이 있다.
주요 보직에 임명된 세 사람은 모두 브렉시트 강경파로 통한다. 주요 보직 외에도 EU 탈퇴에 찬성하는 이들이 내각에 대거 중용됐다. 존슨 총리의 새 내각에 대해 “80년대 이후 영국에서 가장 우파에 치우친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직 EU 탈퇴에만 외교력을 집중하려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존슨 총리의 취임에 애꿎은 중국 정부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중 주도의 내륙·해상 실크로드경제벨트) 참여에 적극적이고, 친중 성향이 강한 존슨 총리의 취임을 이례적으로 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면에는 영국이 EU탈퇴로 유럽 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그 대안으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실제로 당선 직후 홍콩 봉황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새 정부는 대단히 친중 성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경제는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이다. 중국이 영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해주길 부탁한다”며 공개 구애에 나섰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