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언제든 판 깰 수 있단 메시지…사거리 늘린 북한판 이스칸데르 발사

입력 2019-07-25 18:13
합동참모본부는 25일 북한이 오전 5시34분과 5시57분쯤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이 25일 동해상에 단거리미사일 2발을 쐈다. 지난 23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러시아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지난 5월 9일 이후 77일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5일 북한이 오전 5시34분과 5시57분쯤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이 철저히 계산된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한·미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언제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판을 깰 수 있다는 압박용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시점(7월 중순)이 지나자 미사일을 날렸다. 협상이 계속 지지부진하면 언제든 무력 증강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갖추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다만 북한이 아직 미국이 용인할 만한 도발인 단거리미사일만 발사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둘러본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23일 공개한 사진이다. 장소와 잠수함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실전 배치용 신포급 잠수함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5시34분과 5시57분쯤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미사일로 추정되는 2발을 발사했다. 첫 번째 쏜 미사일은 430여㎞, 두 번째는 690여㎞를 비행했다. 둘 다 정점고도는 50여㎞였다. 합참은 당초 두 미사일 비행거리를 약 430㎞라고 발표했다가 미국 측 정보를 제공받은 후 두 번째 미사일 비행거리를 690여㎞라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두 번째 미사일은 새로운 형태로 발사된 부분이 있어서 추가적인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지렛대를 높이려고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α)’를 요구하는 미국식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 측으로부터 진전된 협상안을 제시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 판문점 회담 후 “2~3주 안에 협상팀을 구성해 서로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 도발은 미국이 셈법을 바꿔 나오라는 메시지”라며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려고 하는데 이에 미국이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 사거리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한 대부분 지역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위협 수위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제재 완화를 위해 미국 설득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남측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측면도 있다.

또 북한이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 16일 미국이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하려 한다며 “북·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북한은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남측의 쌀 5만t 지원 계획을 거부하며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았다.

북한 도발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위기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 중국·러시아 연합공중 훈련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실시되고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데 이어 북한까지 군사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한·일 관계도 악화일로에 있다.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