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마한 지역 무덤서 생뚱 맞게 백제 지배층 유물 왜?

입력 2019-07-25 14:39
전남 나주 송제리 고분은 옛 마한지역인 영산강 유역에 있다. 1987년 도굴된 상태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이 고분에 대해 지난해 말부터 발굴 조사에 들어갔던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최근 고대사와 관련해 결정적인 유물을 발견했다. 석실 무덤에서 백제 성왕대의 은제 관식, 은제 허리 띠, 청동잔 등이 나온 것이다.
나주 송제리 고분 전경.

이를 통해 송제리 고분이 백제 성왕대 왕실 지배층 무덤으로 확인됐다고 나주문호재연구소가 25일 밝혔다. 송제리 고분은 마한지역의 무덤 형태인 옹관이 아니라 생뚱 맞게도 백제의 무덤 형식인 석실(돌방)을 갖춘 것이라 발견 당시부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백제와 관련이 있는 유물로 추정됐었고, 다만 그 축조시기를 두고 5세기냐 6세기냐의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발굴 조사에서 6세기 전반 백제 성왕대의 유물이 다수 확인이 된 것이다. 성왕(523∼554년)은 무녕왕의 아들로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를 단행했던 왕이다.
석실서 출토된 은제 관식.

지름 20m 내외, 높이 4.5m로 원형의 평면 형태를 갖춘 고분의 석실 내부에서는 은제 관식이 출토됐다. 백제 고위관료들이 모자에 부착하던 은화관식은 지금까지 꽃 모양(은화관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것은 풀 모양이었다. 풀 모양 은제관식이 나온 것은 처음으로, 은화관식으로 정형화되기 전의 형태로 추정된다. 웅진기 말기에서 사비기 초의 공백을 메워주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석실 출토 호박제 관옥.

은제 허리띠 장식은 백제의 웅진∼사비기 과도기적 모습이다. 또 청동잔, 호박옥, 장식칼 부속품은 공주 무령왕 무덤 출토품과 동일하다. 연구소 측은 유물로 미뤄 왕에 버금가는 지배층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했다.

학계에서는 마한히 백제에 복속된 시점을 두고 근초고왕이 남쪽 정벌을 한 4세기 중반∼4세기 후반이냐, 성왕이 활동하던 6세기 전반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5세기까지는 마한 핵심지에서 대형 옹관이 나와 마한의 정치 세력이 5세기까지는 유지된 것으로 추정이 됐었다. 여기에 이번 송제리 고분 발굴 성과를 통해 마한 정복 시점 6세기 전반 설에 힘이 실리게 됐다.
석실 출토 유물 일괄(은제 관식, 은제 허리띠 장식, 은피 못, 청동잔).

일각에서는 성왕이 파견한 지방관인 담로(檐魯)이 무덤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성왕은 지방 통치 조직으로 담로제(檐魯制)를 시행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전용호 연구관은 “성왕이 파견한 담로의 무덤인지, 마한의 지배층에 통치권을 준 것이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