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대전’ 일본 몰아붙인 한국 “일본, 세계무역 교란”

입력 2019-07-25 00:27 수정 2019-07-25 00:41
일본 “안보상의 이유” 내세우며 협의 응답은 회피
양국 갈등 첨예해 제3국 입장 표명은 거의 안 나와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WTO 규범 위반은 물론 세계무역을 교란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일본 측과 1대1 협의를 제안했다. 일본은 자국의 조치에 대해 ‘안보상의 이유’라는 논리를 되풀이하며 한국의 협의 제안을 외면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24일(현지시간)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간 갈등에서 기인한 조치였다”면서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세계 무역을 교란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일본의 조치는 WTO 기반의 다자무역질서에 심대한 타격을 일으킬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김 실장은 “자유무역체제의 가장 큰 수혜국가이자 올해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공정무역을 강조했던 일본이, 불과 한 달 만에 이와 정반대 조치를 한국을 특정해 취했다”며 일본 측을 향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가 한국 핵심 산업인 반도체 산업을 의도적으로 겨냥하고 있지만, 국제적 분업구조상 이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산업 생산까지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피해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부각시켜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은 일본이 그동안 한국 정부의 국장급 협의 등 각종 협의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던 점을 지적하며 “제네바 현지에서 양국 대표단 간 별도의 1대1 협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측 발표자로 나선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는 자국 조치가 강제징용 사안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 정부 조치는 안보상의 이유로 행하는 수출관리 차원이므로 WTO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고도 했다. 안보상의 이유에 대해서는 포괄적 예외 규정을 인정한 WTO 규정을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측 수석 대표로 참석한 야마가미 신고 외무성 경제국장은 이날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일본 측은 한국 대표단의 협의 제안에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산업부는 전했다. 김 실장은 일본 수출규제 관련 안건 논의가 끝난 뒤 외신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대화 거부는 일본이 (스스로) 한 행위를 직면할 용기도, 확신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눈을 감고 있고 귀도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일 양국의 첨예한 갈등이 드러나면서 제3국들도 별도의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다. 이사회 의장을 맡은 태국 WTO 대사가 “양국 간 우호적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안건은 현지시각으로 낮 12시4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중식시간을 포함해 약 2시간 동안 논의됐다.


비록 가시적인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정부는 이번 이사회 참석을 계기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WT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국제사회에 전파한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본의 조치에 대해 WTO 제소를 비롯한 대응 조치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