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선자금, 현대차 비리, 삼성 비자금, 변양균·신정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좌우 진영과 기업을 가리지 않고 ‘특수통’의 경력을 쌓아온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취임한다. 정치권은 강골 검사에게 ‘네편 내편’이 없다고 본다. 기업들은 앞으로 검찰의 기업 수사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라고 긴장하고 있다.
윤석열호의 닻을 올리는 검찰이 새로워질 부분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기업 담합, 카르텔(독점) 구조에 대한 수사역량 강화다. 윤 신임 총장은 사법농단 수사 중이던 지난해 12월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출장을 강행했고, 평소 감명깊은 책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는다.
이는 윤 신임 총장이 기업의 공정경쟁 질서 보호를 검찰의 큰 책무로 인식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4일 “윤 신임 총장의 인사청문회 발언에는 2개의 키워드가 있었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말했다.
윤 신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재임 시절 4차장 산하에 있던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수사부를 특별수사를 전담하는 3차장 산하로 재편했었다. 공정거래 수사를 특별수사부들과 연계해야 신속하고 완성도 높은 기업수사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그가 총장이 되면서, 우선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에 기업의 담합·카르텔 행태를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팀의 신설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만연했던 기업들의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악용 관행에도 검찰이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총장의 선배와 동기가 다수 남은 ‘집단지도체제’의 구체적 모습도 윤석열호 검찰의 새판짜기 과정에서 큰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윤 신임 총장의 대검 보좌진을 포함한 검찰 고위직 인사 내용은 빠른 시일 내 공개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무일 총장의 경우 취임 이틀 만에 고위직 인사가 이뤄졌었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이튿날 취임한 문 총장과 달리 윤 신임 총장은 임명 재가부터 취임까지 약 10일간의 시간이 있었다. 이미 주요 보직 인사는 결정돼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조계는 2005년 정상명 전 총장의 취임 때처럼 윤 신임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들이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중용될 것으로 본다. 전국 최대 검찰청을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는 배성범 광주지검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경남 마산 출신인 배 지검장은 윤 신임 총장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데,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내정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성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강남일 법무부 기획조정실장도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대검 차장 등의 요직에 거론되고 있다.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경찰과의 관계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윤 신임 총장은 ‘수직적 지휘’가 아닌 ‘대등 협력 관계’로 양 기관의 관계를 정의했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반려해야 할 때에는 애초 접수가 안 된 것으로 하고 해당 경찰관을 검사실로 불렀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함께 기록을 검토하며 수사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윤 신임 총장은 “검·경 서로가 동반자 관계임을 명심한다면, 국민들께서 우려하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변수도 있다. 울산지검의 울산경찰청 경찰관 2명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혐의 수사가 검·경 갈등으로 격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승은 허경구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