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뒤 국내에서 시작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SNS에는 불매운동 참여를 선언하거나 독려하는 메시지가 줄을 잇는다. 여름휴가 때마다 줄을 잇던 일본행 여행객들은 잇따라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있다. 유니클로 매장 안에서 불매운동 동참 여부를 카메라로 ‘순찰’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과거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양상이다.
국민일보는 24일 사회·문화 분야 각 전문가에게 이번 현상이 과거의 불매운동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전문가 대부분은 시민들의 공감과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진 새로운 소비자 불매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먼저 이번 불매운동의 양상이 전파 방식에서 과거와 큰 차이를 보인다고 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금모으기운동은 정부가 주도하고 언론사와 시민단체가 독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출 중심 경제 개발을 추진하던 1970~80년대의 국산품 사용 장려 분위기도 사실상 정부가 이끈 것이었다. 이번에는 SNS라는 뉴미디어를 거치면서 불매운동이 폭발력을 갖고 펴졌다는 분석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누가 주도하기보다 SNS를 통해서 수위나 방법 등을 조절하고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운동은 이렇게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24일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일본불매운동 #노노재팬 #가지않습니다 등 해시태그가 1만 건 이상 등록됐다. 유튜브에서도 유명 ‘유튜버(개인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이 관련 영상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불매운동이 식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대중이 스스로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어서다.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할 뜻을 보이지 않으면서 분노가 정당하다는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이 교수는 “대중 스스로가 분노해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소속감과 성취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전개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정당한 분노와 SNS를 기반으로 이번 불매운동은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의 보복조치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많은 이가 공유하면서 불매운동의 정당성에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반면 한국 사회 전체가 불매운동 자체에 지나치게 매몰됐다는 평도 있다. ‘냉소사회’의 저자이자 평론가 김민하씨는 “불매운동으로 일본 기업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그 문제와 상관없는 사람들, 즉 기업의 노동자나 해당기업과 거래하는 한국기업 등 제 3의 피해를 입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곧 나쁜 사람이라는 정서를 정부와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을 구실로 정부가 국내 기업의 노동이나 환경규제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한국과 일본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불매운동) 방향에 동참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세태는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중 사이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으니 정치권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면서 “이 분위기가 계속 가서 (양국 간 외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조효석 황윤태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