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직접민주주의 실험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논란 속에서도 닻을 올렸다. 시민과 공무원, 전문가들이 어우러진 ‘공정 행정’이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와 오히려 시장 입맛에 맞는 ‘기획 행정’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한다.
서울시는 시민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한 합의제 행정기관 민주주의위원회를 25일 공식 출범한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장의 주요 정책 의사결정의 권한을 일부 시민‧시의회‧공무원 등에 넘기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민주주의위원회가 시민의 권한을 강화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 직속 기구인 민주주의위원회는 시민과 위원회가 제안한 ‘시민민주주의 활성화’ 정책을 모아 심의·조정한 뒤 실제 예산에 반영되도록 하는 조직이다. 기존처럼 시장이나 실·국장 등 한 명의 책임자가 아니라 15명의 위원들이 합의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15명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위원회 위원들은 ‘시민들의 대표’ 성격이다. 위원회의 손발이 될 사무기구는 서울시 ‘서울민주주의담당관’ ‘시민숙의예산담당관’ ‘서울협치담당관’ ‘지역공동체담당관’ 등 4개 과와 16개 팀(직원 70여명)으로 꾸려진다.
민주주의위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산 편성권이다. 2022년까지 ‘시민 민주주의 실현’과 관련된 정책에 연간 1300억~1조원을 예산을 편성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시민이 직접 정책 예산 편성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던 시민참여예산제보다 규모와 권한이 훨씬 커졌다.
서울시는 공직·민간을 가리지 않고 행정 전문가 1명을 선정해 오는 9월 상근직 위원장으로 임용할 계획이다.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14명 중 6명은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위원의 몫이다. 5명은 시의회와 구청장협의회 등 대표성을 지닌 기관의 추천을 받아 서울시장이 위촉한다. 나머지 3명은 서울시 국장급 공무원이 맡는다. 위원 임기는 2년이고 1회 연임할 수 있다.
시민위원 자격은 4급 이상 공무원, 교수, 법률·회계 분야 전문가, 시민단체에서 5~10년 몸담은 경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위원 자격이 특정 직업군으로 제한돼 위원회가 일반 시민을 대표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서울시장이 측근 중심으로 시민위원을 구성해 시장 의도대로 예산안을 편성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서울시는 이는 기우라고 반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위원은 투명하고 공정한 공모 절차를 따라 선발할 것”이라며 “시장 측근이 위원회를 장악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월 1회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필요하면 임시회를 개최한다. 시민 민주주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마을공동체, 민관협치 같이 시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관장한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위원회가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시민들에게 최대 1조원 규모의 예산 편성권을 주면 시의회 고유의 예산 심의 권한을 침해하고, 나아가 시의회 견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민들이 직접 편성한 예산을 시의회가 추후 심의과정에서 ‘안 된다’도 거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를 오해라고 일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회 예산심의를 받을 때 민주주의위원회와 일반 부서의 예산은 구별되지 않는다”며 “민주주의위원회가 편성한 예산도 기존 예산과 동일하게 의회의 심의·의결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