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새 총리에 결국 보리스 존슨…‘영국판 트럼프’라 불리는 아웃사이더

입력 2019-07-23 20:14 수정 2019-07-23 21:16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사태를 책임질 영국 새 총리로 보리스 존슨(55) 전 외무장관이 선출됐다. 수년 전 유럽연합(EU) 탈퇴론에 불을 지폈던 존슨 전 장관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브렉시트 협상은 더욱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전 장관의 독특한 행적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23일(현지시간) 당원 투표 결과 신임 당대표 겸 총리로 존슨 전 장관이 선출됐다고 밝혔다. 존슨 전 장관은 총 9만2153표를 얻어 4만6656표를 획득한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을 누르고 압승을 거뒀다. 투표 자격을 가진 15만9320명의 보수당원 중 87.4%가 투표에 참여했으며, 509표는 무효 처리됐다. 앞서 존슨 전 장관은 5번의 경선 투표와 여러 여론조사에서 잇달아 1위에 오른 바 있어 그의 당선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었다.

존슨 전 장관에게 줄곧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선출 소식이 전해진 직후 트위터에 “보리스 존슨이 새 영국 총리가 된 것을 축하한다. 아주 잘 해낼 것”이라고 축사를 보냈다.

우파 성향의 존슨 전 장관은 영국 정가에서 ‘아웃사이더’로 통한다.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정치인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견될 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걸었기 때문이다.

존슨 전 장관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건 20여년 전 우파 신문 텔레그래프에서 브뤼셀 특파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EU가 콘돔 사이즈를 16㎝로 통일하려고 한다” “유럽 내 비료 냄새를 똑같이 만들기 위해 EU 차원에서 탐지견을 도입할 것”이라는 등 연일 가짜뉴스를 쏟아내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존슨 전 장관이 과연 신임 영국 총리로서 자격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가 텔레그래프에 재직했을 당시 상사였던 한 언론인은 최근 가디언에 “존슨은 차기 총리로 완전히 부적합하다”며 “모두들 그의 ‘도덕적 파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존슨 전 장관은 EU의 약점과 한계에 대한 선정적이고 조잡한 보도로 명성을 얻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생활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하원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경선 투표가 진행 중이었던 지난달 존슨 전 장관은 그의 애인 캐리 시먼즈(31)와 동거하던 집에서 심한 말다툼을 벌여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는 지금까지 이혼을 두 번 했는데, 그때마다 불륜이 발각되는 등 여성편력이 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논란에도 존슨 전 장관은 보수 우파 세력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런던 시장을 지난 2008년부터 두 번이나 지냈다. 특히 그는 시장 재임 시절 공공 자전거 제도 활성화를 위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등 이색적이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예상보다 성공적으로 치뤄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외무장관에 오른 존슨 전 장관은 ‘EU 무용론’을 주장하며 본격적으로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브렉시트 협상에 지지부진한 테리사 메이 전 총리를 비판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메이 전 총리가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내용의 ‘소프트 브렉시트안’을 내놓자 전격 사퇴했다. 다만 현지 언론 일각에서는 존슨 전 장관이 태생부터 유럽회의론자였다기보다는 영국 총리라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브렉시트를 선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와 그의 평전을 쓴 작가들은 존슨 전 장관을 이끄는 최대 동력은 권력욕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본심이 어떻든 전임 메이 총리에 비해 브렉시트 관련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존슨 전 장관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영국이 EU와 어떤 협정도 맺지 못하고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앞서 그는 “오는 10월 31일까지 무조건 EU를 떠나겠다”고 주장해왔다.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큰 가운데 일각에서는 존슨 전 장관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브렉시트 강경파 중 하나인 제이콥 리스 모그 의원은 “존슨 전 장관은 이전의 영국 정치인에게 없었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