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홍콩에 계엄령 선포할 수도…연일 시위대 매도하며 ‘여론전’

입력 2019-07-23 17:33
홍콩 시위대가 훼손한 중국 국가 휘장

중국 중앙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홍콩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강력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중국 관영언론들도 시위대가 홍콩 주재 베이징 연락사무소를 공격한 일을 부각하며 적극적으로 ‘반(反)중 대 친(親)중’ 갈라치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 진압의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시위대가 홍콩 내 중국 연락사무소를 공격한 일에 대해 중국 본토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며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앞서 일부 홍콩 시위대는 지난 21일 연락사무소를 방문해 건물 밖에 내걸린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색 페인트를 뿌리고 계란을 투척했다. 건물 벽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반중구호를 쓰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모욕하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연락사무소는 홍콩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시설로 시위대가 이 건물을 직접 겨냥해 공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 장면을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중국 당국의 권위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평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홍콩 시위대 비난에 나섰다. 같은 날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색 상의에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수십명의 남성이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백색 테러’가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홍콩 언론에서 이들이 홍콩 경찰과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친중파가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달리 시위대의 과격성에만 초점을 둔 보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의 전략은 실제 먹혀들고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본토 여론이 악화되며 시위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한 누리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위대의 행동은 정상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글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확산되며 큰 반향을 얻었다.

SCMP는 중국 정세에 정통한 관측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본토 여론을 명분 삼아 강경책을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톈페이룽 베이항대 로스쿨 부교수는 “중국 본토의 부정적 여론이 강경파의 입지를 넓혀주면서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 정부는 홍콩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본토법을 적용하는 등의 방향으로 상황을 정리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18조를 근거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조항은 홍콩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의 혼란으로 국가의 단합이 위협 받는다고 판단될 경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결정으로 홍콩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중국 정부가 홍콩에 본토법을 적용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이 경우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중국이 50년간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이 무너지면서 홍콩의 자치권이 심각히 훼손될 수 있다.

다음달 초로 예정된 중국 전·현직 지도부의 비밀회동, 베이다이허 회의에 관심이 몰린다. SCMP는 “베이징 지도부는 이번 회의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대응책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며 “홍콩 사태의 중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