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70% 늘어난 갑질 제보…“증거 있으면 신고하세요”

입력 2019-07-23 15:49 수정 2019-07-23 17:07
그림=전진이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A씨는 여전히 회사 대표이사의 폭언에 매일 시달리고 있다. 대표이사는 “말은 알아듣긴 하는 거냐” “그렇게 일해서 월급 가져갈 수 있겠냐”며 모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다. A씨에 따르면 탁자를 내리치거나 고함을 지르는 일은 일쑤였고, 그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그만둔 직원이 많다고 했다. A씨는 어떻게 하면 법적으로 대표이사의 갑질을 멈출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다른 직장인 B씨도 여전히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B씨는 “회식을 끝내고 가려는데 상사가 제 옷을 잡고 ‘어딜 도망가냐’고 소리 질렀다”고 털어놓았다. 퇴사 종용과 무시, 폭언은 일상이라고 했다. B씨는 “상사가 괴롭히는 녹취 파일을 갖고 있다. 괴롭힘 금지법 위반으로 신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됐지만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은 여전히 적지 않다. 이들 중 일부는 녹취록 같은 증거를 가지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23일 “법 시행 후 일주일간 이전보다 70% 이상 많은 565건의 ‘갑질’ 제보가 들어왔다”며 “특히 신원이 확인되고 증거가 있는 제보만 100건”이라고 밝혔다.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괴롭힘에 법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법 시행 이전보다 괴롭힘 관련 제보도 크게 늘었다. 예전엔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제보가 전체의 30%도 채 안 됐었는데, 지난 한 주 동안 61.8%가 괴롭힘 관련 제보였다.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일을 강요한다는 내용도 많았다.

한 시내버스 회사에서 근무 중인 정비사는 “매년 김장철만 되면 업무와 무관하게 배추 5000포기를 김장하라고 직원들에게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복직했더니 사장이 “책상을 빼라”고 소리 지른 뒤 업무를 주지 않는다는 제보도 있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이 법적으로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문의도 잇따랐다. 한 회사원은 직장갑질119에 “상사가 매일 사무실 앞에 흡연 여부를 표시하라고 하며 담배를 끊지 않으면 힘든 부서로 보내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도 갑질에 해당하느냐”고 물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을 유야무야하거나 약하게 징계하는 데 그친다면 갑질은 교묘하고 은밀하게 진화할 것”이라며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증거가 확실한 제보를 추려 고용노동부에 신고, 근로감독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