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분전 중인 한국 수영 대표팀에 13일 김수지의 여자 1m 스프링보드 동메달 이후 이번 대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남자 수구대표팀이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감격의 세계대회 첫 승을 따냈다.
한국은 23일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15위 결정전에서 뉴질랜드를 맞아 연장 승부던지기 끝 17대 16으로 승리했다. 4쿼터를 12-12으로 마친 뒤 승부던지기에서 5-4로 앞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은 대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조별리그 3패, 카자흐스탄과의 순위 결정전에서도 4대 17로 대패. 때문에 대표팀은 뉴질랜드를 상대로 필승을 다짐했다. 그런 한국의 결의는 매 쿼터 시작 시점 중앙에 공을 두고 양팀 스프린터가 공을 향해 달리는 공격권 다툼에서 엿보였다. 공격권 다툼에서 한국은 4대 0으로 완승하며 좋은 기분으로 매 쿼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날 한국은 8분간 진행되는 1쿼터 경기 시작 11초 만에 첫 슈팅을 한 데 이어 경기 개시 57초 뒤 김동혁이 첫 골을 성공시키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뉴질랜드에 2점을 연거푸 내줘 1-2로 뒤졌지만 쿼터 종료 5분8초를 남기고 타임아웃을 부른 뒤 이어진 공격에서 이성규가 동점골을 넣었다. 아쉬운 후방패스미스로 뉴질랜드에 3번째 득점을 내줘 다시 리드를 빼앗긴 직후에도 뉴질랜드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송재훈이 잡아 텅 빈 골문에 밀어 넣으며 다시 득점에 성공했다. 결국 3-3 동점으로 1쿼터가 끝났다.
2쿼터 시작 직후에는 한국 선수의 일시적 퇴장으로 숫적 열세인 상황에서 골키퍼 이진우가 뉴질랜드의 첫 두 슈팅을 모두 막아냈다. 이어 동료의 훌륭한 패스를 받은 주장 이선욱이 상대 골키퍼와의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넣어 4-3으로 다시 앞서갔다. 이후 이진우가 계속해서 뉴질랜드의 공세를 막아냈지만 다시 한번 벌어진 숫적 열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실점했다. 다행히 골문 근처에서 공을 받은 권대용이 곧바로 득점하며 5-4가 돼 수구경기장에 모인 수백여 관중의 환호성을 이끌었다. 전반 종료 1분 20초 전에는 이진우가 오른손으로 뉴질랜드의 슈팅을 건드렸지만 공이 굴절돼 득점으로 이어졌다. 직후 이진우는 아쉬운 탄성을 질렀지만 이내 씩 웃으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양팀은 5-5 동점으로 후반을 맞았다.
후반 막판까지는 뉴질랜드의 공세가 이어졌다. 3쿼터 시작 직후 부주장 권영균이 골키퍼의 머리를 넘기는 멋진 로빙골로 득점에 성공해 6-5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이어진 8-8 동점 상황에서 공격 중 공을 빼앗긴 뒤 역습을 허용해 1쿼터 중반 이후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권대용이 만회골을 넣었지만 쿼터 종료 30초 전 뉴질랜드 매튜 루이스의 강슛이 한국 골망을 흔들며 9-10으로 다시 뒤졌다. 마지막 공격마저 뉴질랜드 골키퍼 정면으로 향해 1점 뒤친 채로 3쿼터가 끝났다. 양팀의 체력전 양상으로 넘어간 4쿼터 개시 후에는 한동안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루이스에게 다시 한번 점수를 내줘 9-11이 됐다. 2점차는 이날 최다 점수차였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진우가 있었다. 권영균의 골로 10-11로 추격한 뒤 이진우가 연속 두 번의 선방을 해내며 점수차를 유지했다. 놀라운 선방쇼에 현장에 와 있던 외신 기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결국 한국은 주장 이선욱의 동점골로 경기 종료 3분19초를 앞두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최하위를 피하기 위한 뉴질랜드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종료 1분 30초를 남기고 골키퍼를 제외하고 한국 선수들이 미처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뉴질랜드 공격수가 한국 골문 앞에서 긴 패스를 받아 11-12를 만들었다. 이승재 코치는 경기 뒤 “막판 너무 공격적으로 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패색이 짙었지만 한국 대표팀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종료 32초를 남기고 권영균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12-12를 만들었다. 수구의 공격 제한 시간은 30초다. 이 슛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뉴질랜드가 공격 제한 시간을 소비한 뒤 단 2초만 남기고 반격해야하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강력한 중거리슛을 뉴질랜드 골문에 때려 넣은 권영균은 “그 상황에선 안 들어간다고 안 던지고, 들어간다고 던지는 게 아니다. 무조건 넣는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 있던 누구라도 넣었을 것”이라며 “날 도와준 동생들 덕에 넣었다”고 공을 돌렸다.
이진우가 뉴질랜드의 마지막 공격까지 선방에 성공하며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연장 승부던지기에서도 이진우가 빛났다. 이진우는 두 번째 던지기에 나선 뉴질랜드 니콜라스 스탄코비치의 슈팅을 오른손을 뻗어 막아냈다. 공을 막아낸 이진우는 포효 후 오른손을 번쩍 들고 기뻐했다. 이진우는 경기 뒤 “막판 안타까운 상황이 나왔지만 4쿼터 초반 선방에 성공한 뒤에는 나만 잘하면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며 “형들이 따라잡아 줄 거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승부던지기에서는 “눈만 보고 감독님이 막으라고 했는데 스탄코비치가 오른쪽을 보길래 오른쪽으로 갔다”며 “이 짧은 순간에도 ‘이거 놓치면 진다’는 마음으로 막아냈다”고 설명했다.
이후 권영균이 이날의 마지막 슈팅을 성공하며 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경기가 종료됐다. 이로써 한국은 대회 목표인 ‘1승’을 달성하는 동시에 1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선욱은 “한국 수구가 한걸음 더 나아가는 시합이 됐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 코치는 “응원해주신 국민들 덕에 값진 1승을 했다”며 “이후 더 많은 지원을 받아 선수들이 전지훈련 등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더욱 경기력이 향상될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광주=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