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만에 사라지는 ‘물뽕’…버닝썬 계기로 흔적찾기 나선 검

입력 2019-07-22 17:51 수정 2019-07-22 19:48

대검찰청이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GHB(일명 물뽕)’에 대한 감정·수사기법을 고도화하는 연구에 나섰다. 수사당국은 GHB가 투약한 지 반나절만 지나면 체내에서 빠져나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관련 수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GHB가 체내에 남긴 흔적을 찾는 게 목표다. 무색·무취한 GHB는 성범죄에 활용되는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검출이 쉽지 않아 직접적으로 연계된 성범죄의 처벌 사례는 아직 없다.

대검은 GHB 적발 기준치를 현실화하고 시간이 흘러도 GHB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감정·수사기법을 연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이 내용은 13개 부처가 참여하는 마약류 대책협의회에서 최근 필요성이 보고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공조하고 있다. GHB 수사를 위한 정밀 연구가 범정부 차원으로 추진되는 것은 처음이다. 검찰 관계자는 “클럽 버닝썬 사태가 불거지면서 GHB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GHB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버젓이 유통될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지만 처벌이 아직 미미하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GHB 밀수, 매매, 직접 투약 등으로 처벌된 사범은 53명에 그쳤다. 이 중 성범죄로 분류된 건 1명도 없다. 버닝썬 의혹이 확산될 당시에도 GHB를 술에 몰래 타 클럽을 찾은 여성에게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다는 제보가 잇따랐지만 실제 입건된 사례는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은 몸에서 금세 배출되는 GHB의 특성 때문이다. GHB는 일반 음식에도 극소량 들어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일정 수치 이상 체내에서 검출돼야 외부적으로 GHB를 투약했다고 본다. 기준치는 2001년 유엔마약위원회가 권고한 10ppm에 머물러 있다.

대검 등은 이 수치가 너무 높다고 보고 임상 연구를 통해 적정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외에선 10ppm 기준을 5ppm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국내에는 GHB 연구가 거의 없어 한국인을 기준으로 한 정밀 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GHB 투약 후 인체에 남아있는 특정 성분을 분석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한다. GHB를 투약하면 기억을 잃어버려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당할 경우 신고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골든타임’을 놓치더라도 특정 성분이 검출되면 투약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성폭력 관련 약물사용 감정 의뢰 건수> (단위: 건)
연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건수
366
462
630
800
861
<자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버닝썬 사태 이후 GHB는 괴담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지난 3월부터 2개월간 단속한 마약 판매 광고글 가운데 49%가 GHB 광고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약물에 이용된 것 같다”고 주장하는 사건은 매년 늘고 있다. 국과수에 의뢰된 성폭력 관련 약물사용 감정 건수는 2014년 366건에서 2018년 861건으로 135% 증가했다.

GHB에 기반한 성범죄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과거 맡았던 사건이 물뽕을 이용한 범죄였을 수 있겠다”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10여년 전 만난 성폭력 피해자가 술을 한 잔 마신 뒤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는데, 직접 계산을 하고 상대방과 교감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혀서 매우 억울해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감정·수사기법을 정밀화, 고도화하는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