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들은 난리인데…입법고시 문항 “비슷하지만 고의는 없었다”는 국회

입력 2019-07-22 17:44

지난 5월 실시된 제35회 입법고시 2차 시험의 행정법 1개 문항이 사설 모의고사와 사실상 같은 문제였다는 국민일보 보도(7월 22일자 1·5면)에 대해 국회 사무처는 22일 “유사성 논란은 있지만 출제자의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는 모의고사를 진행한 서울 사립대 A교수가 2차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선정돼 같은 취지의 문제를 냈다고 인정하면서도 “특별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냈다. 고시 준비생들은 국가 기관이 주관하는 시험에서 부정 출제 의혹이 불거진 만큼 보다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입장 자료를 통해 “문제가 다소 유사하더라도 배경이 되는 법률과 판례가 다르고 정답 기술방향도 차이가 있는 점을 확인했다”며 “면접 등 남은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해당 문제를 제시한 A교수는 이 문제가 자주 다뤄지는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며 “다른 출제·선정 위원 및 검토위원도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해당 문제를 최종적으로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전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항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의 80~90%는 A 교수에게 있다”고 했었다.

고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씨인사이드 행정갤러리' 캡쳐

국회 사무처의 이런 발표에 고시 전문가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입법고시 출제위원이었던 전직 교수 B씨는 “자주 다뤄지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실제 시험이 모의고사와 이렇게까지 똑같아서는 안 된다는 건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이미 2차 시험 합격자를 발표했기 때문에 고시 주관기관이 이를 번복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1차적으로는 A 교수가 모의고사와 유사한 문제를 그대로 제출한 잘못이 있지만 이를 거르지 못한 건 전적으로 사무처의 관리 책임”이라고 했다.

고시 준비생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하루종일 벌집 쑤신듯한 분위기였다. “말도 안 되는 해명”이라는 격앙된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수험생은 서울 유명 대학 커뮤니티에 “2차 시험 성적을 다시 조회해보니 0.64점 차이로 떨어졌다. 행정법 과목에서 이번에 논란이 된 문제가 가장 어려웠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글을 썼다. 다른 대학 고시반 게시판에는 “행정법 1문은 흔한 주제가 아니고 발문도 생소해 당황스러웠던 문제”라며 “누군가는 모의고사 답안을 그대로 작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분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일부 수험생들은 모의고사 유사 문제 출제 의혹이 불거졌던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옛 행정고시)에 대해서도 인사혁신처가 명확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시 전문가들은 사설 강의를 하는 교수가 출제위원으로 선정되고, 출제위원이 다시 강의를 하는 현 구조에서는 이런 문제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정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의에서 출제된 모의고사 문제와 사실상 같은 취지의 문제가 그대로 실제 고시에 등장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고시생들 사이에서 출제위원급 교수가 내는 모의고사는 A급 자료로 꼽힌다. 3년째 고시 준비를 하는 성모(28)씨는 “행정고시나 입법고시는 과목당 1~2점 차가 모여 당락을 가르는데, 실제 시험문제와 같은 문제를 미리 풀어보고 들어가는 건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라며 “유명 대학의 모의고사는 고시촌에서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조효석 방극렬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