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홍콩…흰옷 괴한들, 시위대 겨냥 ‘백색테러’

입력 2019-07-22 15:46 수정 2019-07-22 16:10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7주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에서 시위대를 겨냥한 ‘백색(白色) 테러’가 처음 등장했다.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각목 등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해 최소 45명이 부상을 입었다. 테러의 배후에 친중파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반(反)중국 대 친(親)중국’의 극한 대립 구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들은 22일 전날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흰 상의에 검은 하의로 복장을 통일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 무리가 갑자기 들이닥쳐 금속 막대기와 각목 등을 휘두르며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급속도로 공유됐다. 일부 시민들은 테러단의 무자비한 폭행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테러단은 정차한 전철의 객차로 피신한 시민들을 쫓아가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가해 무리 중 일부는 테러를 기념하듯 자신들의 단체 사진을 SNS에 올렸다. 아비규환의 사태는 홍콩 경찰들이 도착할 때까지 무려 30분간 계속됐다.
시민들 향해 무자비하게 몽둥이 휘두르는 흰옷 남성들. Stella Lee 트위터 캡처

현지 언론들은 테러단이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들을 집중 공격했다며 이들의 배후에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권력자나 극우 세력이 반정부 세력이나 혁명운동에 대해 행하는 탄압을 의미하는 백색 테러일 수 있다는 것이다. SCMP는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들 테러단이 중국 폭력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지난 19일 ‘홍콩 독립’ 주장 단체 회원들이 고성능 폭발물을 소지하다 적발되는 등 홍콩 정부와 친중파 측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사태로 여론이 반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현장에 출동했던 홍콩 경찰이 테러단으로부터 몽둥이 몇 개를 압수했을 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콩 경찰이 전날 시위 상황에서 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콩 정부는 테러단의 만행에 대해 “어떤 폭력도 용인될 수 없으며 이번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들의 정체가 친중 세력으로 밝혀질 경우 ‘친중 대 반중’이라는 극한 대립 구도가 강화되며 홍콩 시위가 대규모 반중 시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