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일본 수출 규제 고려…기재부, 정책 효과 감안
추경 지연, 대외여건 불확실 속에 기재부 부담 커져
한국 경제의 앞길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수정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전망치(2.4~2.5%) 보다 0.2~0.3% 포인트 낮은 수치다.
한은의 전망치가 기재부보다 더 낮아진 배경에는 일본 수출규제라는 ‘돌발 변수’가 있다. 여기에다 기재부는 추가경정예산 집행, 각종 경기 진작정책 효과를 반영해 조금 더 높게 전망치를 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회의 추경안 처리가 늦어지고 대외여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재부의 ‘목표 달성’ 부담은 커지고 있다.
21일 기재부와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면서 민간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 소비자물가, 경상수지 등 세부항목에서도 정부보다 낮게 숫자를 잡았다. 정부가 바라보는 수준보다 더 경기 전망을 좋지 않게 본 것이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대비)은 기재부 2.4%, 한은 2.3%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기재부와 한은이 각각 -4.0%, -5.5%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기재부 -2.8%, 한은 -3.3%이고 소비자물가 증가율은 기재부 0.9%, 한은 0.7%다.
한은의 숫자가 더 부정적인 건 일본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기관의 발표 시점 사이에 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터졌다. 대외여건 악화가 한국 경제에 주는 충격을 심각하게 고려한 것이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600억 달러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관측했다. 앞서 기재부는 올해 수출과 수입(가격 기준)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보다 8% 포인트씩 내리면서도 경상수지 605억 달러 달성은 가능하다고 추산했었다.
다만 두 기관의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 차이(0.2~0.3% 포인트)에 ‘일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반도체 기업들의 재고량, 향후 일본정부 움직임 등을 예단하기 쉽지 않아서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경제성장률을 얼마나 끌어 내릴지 계산하기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한은도 “일본 수출규제 영향에 관해선 조치의 강도나 축소 여부를 알 수 없다. 단, 하방 리스크에 가깝고 경제주체 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 안 좋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일부 반영했다”고 밝혔다.
결국 ‘일본 영향’과 ‘정책 효과’를 두고 기재부와 한은 사이에 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기재부가 제시한 2.4~2.5%에는 추경 효과와 함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한 투자·내수 진작정책이 가져올 부양효과도 담겨 있다.
문제는 실제 성장률이 이 숫자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의 0.1% 포인트 상승효과를 기대한 추경안은 80일 넘게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일본 수출규제가 덮치면서 반도체 위기를 증폭되고 있다. 반도체 위기는 수출은 물론 내수까지 나쁘게 만든다.
여기에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다른 기관보다 높은 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 현대경제연구원은 2.5%, LG경제연구원은 2.3%을 제시했었다. 이 수치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전 전망치다. 해외 기관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 중후반대까지 내리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4%에서 2.0%로, 모건스탠리는 2.2%에서 1.8%로 하향 조정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